우리에게 다가온 계절에 대한 소고
나는 단순히 '심한 감정의 변화를 갖고 태어난 여자'라고만 생각하며 이 무한한 감정 놀이에 순응하며 살아왔었다. 대체 왜 날씨가 어두우면 내 마음이 가라앉고, 어느 날은 누군가의 작은 말과 행동 하나에 내 마음이 찢길 듯 아프며, 밝은 날에는 작은 새 한 마리 지저귀는 소리마저도 나를 들뜨게 하는 이 모든 이유 없는 것들에 대해서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계절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계절의 바뀜은 온몸을 계절에 적시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아침 출근길, 손바닥을 쫙 펴고 빠르게 걸어가면 차가운 공기가 나의 손을 잡아주면서 '가을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어김없이 가을은 나에게 이렇게 또 찾아왔고 세월의 흐름은 무한히 반복된다. 허전한 마음을 낯선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어 지는 가을이다.
피상적인 인간관계라 불리는 회사에서도 머리로는 그 관계의 허무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온전한 이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을 찾고 싶고 기대고 싶어 한다.
알면서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인간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망각이란 것이 그렇게 무섭고 우리에게는 합리화라는 우수한 도구가 있으니 우리는 수없이 잊고 또 반복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이별을 경험하는 것도 우리는 성장이라고 말하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든 것을 반복하면서 무뎌지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 숨 쉬는 날것의 감정을 가지려면 나 자신의 일상을 그 대가로 줘야 한다. 젊은 시절의 불타오르는 연애가 그러했고 그 연애의 끝을 놓았을 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으로 우리는 매일 같이 살 수는 없다. 나의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노화가 진행되었고, 정신은 그 몸에 갇혀 같은 속도로 선명한 색의 감정들도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정은 점점 더 강력한 동기를 주지 않으면 평범한 일상 속에 묻혀버려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한 일상과 행복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아가고 있다. 반복하면서 무뎌지는 우리의 성장에 또다시 찾아온 가을은 쓸쓸한 감정을 여전히 우리에게 불러일으키지만, 한편으로는 이 가을의 감정은 그 어떤 계절이 주는 감정보다 참으로 우아하고 고풍스럽기 가을은 언제나 기다려진다.
그렇게 이번 가을도 쓸쓸하지 않게
그렇게 아름답게 흘러간다.
<Life under the montains>, Tibor Nagy, oil on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