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바덴 공국의 궁전을 배경으로 한 레이저쇼
이 축제는 독일 남서부의 칼스루헤(Karlsruhe)에서 열리는데 정식 명칭은 슐로스리히트슈피엘레 칼스루헤(Schlosslichtspiele Karlsruhe)로 성에서 하는 빛 축제라는 꽤나 직관적인 이름이다.
이 축제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인데 이 사진에서 알 수 있듯 축제는 오후 8시에 시작해서 약 11시 반이 되어서야 끝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교통편을 잘 잡든지 아예 1박을 할 계획을 세워놔야 한다. 이걸 보러 오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나는 오후 6시부터 가서 성 앞마당 명당에 자리를 잡았는데 놀랍게도 나처럼 일찌감치 자리를 잡으러 온 사람이 많았다. 매일같이 열리는 축제라 사람이 그렇게까지 몰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축제가 끝나고 집에 갈 때 뒤를 돌아보니 이 축제를 위해 지정된 구역이 다 차서 아예 차도까지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고 길 건너 펍은 성과는 거리가 꽤 됨에도 멀리서나마 축제를 감상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4주간 매일 열리는 축제이니만큼 사람들을 꾸준히 끌어모으기 위해 날마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데 정말 칼스루헤에 살아서 단 하루가 아닌 사흘쯤이라도 보러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축제 중에는 눈앞을 가득 채우는 영상과 멋진 음악에 휩싸여 지갑과 스마트폰을 무사히 들고 집까지 온 게 다행일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크레딧을 보니 AR/VR 기술이 최대로 적용된, 그야말로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축제였던 것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예산이 들었을 것 같은데 슈투트가르트 내 모든 축제를 후원하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슈투트가르트에서 가장 큰 지역 은행인 BB Bank가 이 축제를 후원한 것을 보고 덕분에 이런 축제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칼스루헤는 옛 바덴 공국의 수도이며 슈투트가르트와 함께 바덴뷔르템부르크 주에 속해 있다. 옛 뷔르템부르크 공국의 수도였던 슈투트가르트와 주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했으나 주 정부 청사가 슈투트가르트에 둥지를 틀며 칼스루헤는 슈투트가르트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2등 도시로 쇠락하게 된다. 하지만 주에서 슈투트가르트 다음으로 큰 도시이니만큼 슈투트가르트의 대표 기업들이 칼스루헤의 축제에 종종 참여하고는 한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는 쏘아보내는 영상 뒤로 성의 모습이 보여서 몰입이 조금 덜 됐지만 해가 질수록 영상이 성에 완전히 입혀져서 신기했다. 게다가 어떻게 저 영상이 나오는 구간을 제외한 성 주변이 저렇게까지 깜깜할 수 있는지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다.
영상을 남겨온 덕에 지금 한국에서도 이 축제를 추억할 수 있어 다행이다. 원래 좋은 건 카메라 말고 눈에 담자는 주의긴 하지만 이 축제는 너무 좋아서 이렇게라도 계속 간직할 수 있었으면 했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니 올해는 8월 18일에서 9월 18일까지 한 달간 축제가 열린 모양이다.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가 보고 싶다. 이 축제 덕분에 어쩌면 잊혀졌을 하나의 여름밤이 반짝이는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