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책을 알게 되는 장소
독일에는 헌책방이 정말 많아서 도시에 한두 곳은 꼭 있을 정도다. 자세히 보면 언제부터 운영했다는 팻말도 있는데 대부분 아주 오래된 곳들이라 독일어를 아주 잘해서 정서법 개정 전인 수십 년 전에 쓰인 책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이런 서점에서 책을 사 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헌책방을 좋아해 자주 들르는 사람들은 헌책방에 최근에 유행해 자주 접하게 되는 책이 아닌 생각지 못한 분야의 책을 발견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도 하고 때로는 초판본이나 작가의 생전에 출간된 판본을 구하고 싶다는 이유로 헌책방 또는 고서점에 발걸음하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가 젊은 시절 독일 튀빙엔에서 운영했던 고서점인데 여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매주 금, 토, 일 사흘만 영업하는데다 그마저도 단 서너 시간 동안만 열려 있는 괴상한 운영시간에도 불구하고 폐업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지만 서점 운영만으로 시청에서 지원금을 받는다든지 하는, 내가 모르는 어떤 사유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기억으로는 아마 2층을 제외하고 3층과 4층이 서점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은데 매일같이 북카트에 책이 쌓여 있어도 아무도 멈춰서서 구경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어쩌다 집에서 발견했다면 격리시키거나 버릴 것 같은 상태의 헌책들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여기서 파는 책 중 상당수가 20세기 초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통용되던 프락투어라는 읽기 힘든 서체로 인쇄되어 있기까지 하다! 본격 우리 할머니보다 나이 많은 책들의 무덤
슈투트가르트의 중심가인 슈타트미테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고서점인데 이 곳은 특이하게 유아동 신간 도서를 함께 판매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도서도 많아 자주 가서 책을 구경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였던 발터 벤야민의 일기 프랑스어 번역본을 이 곳에서 구하기도 했는데, 절판된 지 오래된 책이라 이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아주 기뻤다.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의 연인이자 그의 모든 저서를 체코어와 영어로 번역한 번역가이며 기자, 작가로도 활동했던 밀레나 예젠스카의 에세이도 이곳에서 찾았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여담으로 이 서점이 위치한 칼버슈트라세의 이름은 칼브(Calw)라는 곳에서 왔는데 바로 헤르만 헤세가 태어나서 5살까지 살았던 집이 검은 숲 속 칼브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 있다. 이 집은 지금 헤르만 헤세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헤세의 책을 매우 좋아했던 내 기준에서 생각보다 꽤나 볼거리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헤세가 말년을 보냈던 스위스의 생가에 꾸며진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가 더 많다고 하니, 새삼 한 사람이 수십 년간 살아가며 남기는 것들은 유무형을 막론하고 그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살까 말까 망설였지만 결국 사지 않았는데, 일단 나는 헨리 밀러라는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 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 두 권을 구매하느라 들이부은 5만원이 아까워 죽을 지경이다 - 스페인의 거장 화가 호안 미로의 작품은 있으면 보고 없으면 말고 정도의 관심만 있어 굳이 지금 여기서 사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강의록인데 레비스트로스 생전에 출간된 판본인데다 강의록은 귀하니 사 왔다. 사실 레비스트로스의 학설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고 수능 국어 모의고사 지문에서 읽은 정도의 지식만 갖고 있지만 이 강의록을 읽으면서 더 잘 알고 싶었다. 레비스트로스의 대표작으로는 브라질 내륙 지방의 원주민 사회와 문화를 관찰하고 쓴 기행문인 « 슬픈 열대 »가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영화 « 아바타 »가 이 책에 서술된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