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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Mar 14. 2022

아이가 책을 찢을 때마다 높아지는 언성

중고책이 가져온 평화 (책육아_2)

보드북에서 양장본으로 넘어가는 시기가 오면서 엄마인  마음도 같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되었.


"엄마가 찢지 말라고 했지!!"


아직 두 돌도 안 된 아이에게 먹힐 리도 만무하건만 한 번 높아진 언성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자꾸 찢고 구기면 책 안 보여줘!!"


책을 가져가며 손이 안 닿는 곳에 놓아버리는 치사한 방법까지 써가면서 어설픈 훈육이랍시고 해보지만 안 그런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돌아서면 또 찢는 딸.


새 책을 망가뜨리는 것에 처음부터 너그러운 엄마도 있겠지만 워낙에 책을 깨끗하게 보던 습관이 있어서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처음부터 목소리가 높아진 건 아니었다. 각종 육아서를 참고해서 나긋한 목소리로 달래도 보고,

"이렇게 찢으면 책이 아프대. 딸도 부딪히거나 긁히면 아야 하지? 책도 구겨지면 아파서 잉잉 울어."

의인화까지 해가며 잘 설명도 해보았다.


하지만 오히려 종이를 찢고 다시 테이프로 붙여보고 싶은 욕구가 있는지 찢고 나선 당당하게 테이프를 하나만 달라는 이 아이를 어찌할고..




각 페이지가 두껍게 되어있는 보드북은 아이의 어지간한 힘으로는 쉽게 찢거나 구길 수 없어서 새 책이 금방 망가질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 하지만 겉표지를 제외한 속지는 모두 얇은 종이로 만들어진 양장본은 따뜻하고 포근해야 마땅한 책육아 시간을 매번 훈육의 장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아이가 책을 즐겁게 보는 것이 먼저인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새 책이 구겨지고 망가지는 것을 보려니... 도 모르게 인상을 쓰게 되고 두 돌도 안된 아이랑 기싸움을 하고 있으니 답 없는 미로 속에서 나갈 출구를 찾아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중고서적을 산 일이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아기니까 헌 책보단 깔끔한 새 책이 위생상 좋을 것 같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데 육아서적을 읽다 보니 많은 엄마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비용적으로도 부담이 덜 된다며 추천하는 말에 귀가 팔랑였던 것이다.


일일이 소독 티슈로 닦아줘야 하는 과정이 조금 번거롭기도 했지만 새 책을 사도 한 번씩은 닦아주니까 그냥 좀 더 꼼꼼하게 닦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보통 귀가 팔랑여서 뭔가 충동적으로 구매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 중고책 구입은 책육아에 있어 가히 필수적이지 않을까 싶다. 비선호에서 선호로 완벽히 돌아선 내 모습에 나도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새 책으로 다 구매하다간 감당하기 힘든 카드내역서가 돌아올 것이 뻔하고 무엇보다 아이가 좀 낙서하고 찢는 것에 이렇게 관대해질 수 있다니.. 스스로가 낯설 정도였다.


안 되는 행동이라고 얘기는 해주지만, 아이가 종이를 어김없이 찢고 나면 같이 테이프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 또 시간을 보냈다. 언성을 높이지 않고 그저 또 다른 놀이인 것처럼 말이다.


이미 조금은 사용감이 있는 책이다 보니 그냥 거기서 좀 더 망가뜨리면 어떠하리.. 이런 마음이었나 보다. 더 신기한 것은 엄마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니 얼마 안가 아이도 찢고 구기는 것에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정말 아이들은 청개구리인 것인가..




이후로 난 조금은 더 편하고 너그러운 책육아를 하고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해도 비싸게 주고 산 책을 아이가 흥미 없어하면 얼른 봐주길 바라며 조급해지기도 하는데 저렴하게 득템한 책들은 좀 시큰둥해도 언젠가 보겠지 하면 여유로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정말 시간이 좀 지나니 자신만의 흥미와 속도에 맞게 다 찾아 꺼내온다.


앞으로의 책육아에, 중고책 말고 또 어떤 매력들을 발견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추억을 쌓아갈 수 있을지 기대 된다. 부디 너그러운 엄마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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