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궁금하셨죠?
지난 글에서 다모증이 어떤 증상인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그럼 다모증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그게 중요하겠죠? 우선 몸에 난 털은 직접적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보니 환자들도 외모에 대해 많은 컴플렉스를 갖거든요.
우선 다모증의 정도를 평가해야 합니다. 과연 이 환자가 얼마나 심한 다모증인지, 그 정도를 판단해야죠. 그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수정된 Ferriman-Gallwey (mFG) 다모증 점수 체계'입니다.
Modified Ferriman-Gallwey (mFG) scoring system
다모증의 진단이나 심각성은 사람마다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 점수 체계를 이용하여 통일된 기준으로 삼고 진단합니다. 위의 그림처럼 신체의 각 부위가 어느 점수에 해당되는지를 알아보고, 점수가 8점 이상이면 다모증으로 정의해요. 그런데 이 점수도 좀 한계가 있습니다. mFG scoring system은 흑인 또는 백인 여성에서의 기준이고 털의 성장 양상은 인종 및 민족에 따라 다른 기준이 확립되어야 하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대상 인구의 95% 이상에 해당하는 다모증 점수는 우리나라 여성의 경우는 6점 이상을 다모증으로 정의합니다.
다모증의 치료
다모증은 임상 징후일 뿐, 그 자체로 병은 아닙니다. 따라서 다모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아무리 경한 정도라고 해도 남성형 체모를 갖는다는 사실은 우리 여성들에게 심리적으로 매우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죠. 따라서 치료를 결정함에 있어 환자 자신의 주관적 요구도가 중요해요. 아무리 경해도, 당사자가 심하다고 느끼면 치료를 진행하는 거죠. 또한 다모증의 해결 뿐 아니라 생식, 대사 관련 증상의 치료 및 예방이 가능해야 하니, 원인 질환이 있으면 그 질환의 치료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두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치료의 효과가 100%가 아니므로 장기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고, 약물 치료의 효과는 수개월 이후부터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하셔야 하겠습니다.
1. 생활 습관 교정 (Lifestyle modification)
규칙적 운동과 건강한 식이를 권장하는 생활습관교정은 고안드로겐증을 호전시키고 다낭성난소증후군 환자에서 동반되어 증가하는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인 반면 다모증에 대한 효과는 뚜렷하지는 않아요 (Moran et al., 2011). 그러나 다모증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낭성난소증후군 환자의 치료에서 생활습관교정의 병합이 권장되고, 비만할 경우 다모증의 정도가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과체중 또는 비만인 경우 생활습관교정을 통한 체중감소가 우선적입니다.
2. 미용적 제모술 (Cosmetic measures)
미용적으로 체모를 제거하는 방법은 의학적 치료법에 보충적으로 사용될 수 있어요. 다모증이 경미하거나 국소적인 경우에는 이 방법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좋은 치료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제모방법으로는 표백(bleaching), 뽑기(plucking), 면도(shaving), 왁싱(waxing), 화학적 치료 및 전기분해술(electrolysis)이 있는데 이 중 전기분해술만 영구적으로 모낭을 파괴할 수 있어요.
전통적인 치료법은 국소적 불편감이 유일한 단점으로 비교적 안전하며 모낭의 성장 주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간혹 면도를 반복하는 것이 체모가 더 굵고 길게 자라게 한다는 통념은 변도 후의 체모의 단면이 자연적 체모의 가늘어지는 끝보다 뭉툭하여 더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생긴 오해에요. 미용적 제모법은 약물 치료에 병용하여 약물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기 전의 초기에 병합하여 사용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가장 최근에 도입된 레이저 치료법은 선택적 광열분해(photothermolysis) 원리를 이용하는데 이는 모낭의 멜라닌 색소가 특정 파장의 광선을 흡수하여 모낭의 파괴로 이어지게 하는 원리에요. 따라서 일반적으로 레이저 시술은 피부는 밝고 체모는 어두운 색깔인 경우에 가장 효과적이에요 (Sanchez et al., 2002). 레이져 치료는 안전하고 시술이 간편하며 부작용이 적고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전신적 다모증에서 단독 또는 약물 치료에 병합하여 고려할 수 있는 치료법이에요. 효과가 좋기 때문에 최근에는 오히려 다른 치료법보다 우선되는 경향이 있고 저도 권유하는 편입니다.
3. 약물 치료
다모증에 대한 약물 치료는 당장의 임신 계획이 없는 여성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대부분은 안드로겐 활성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데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1) 난소와 부신의 안드로겐 합성을 억제시키는 방법
2) SHBG(성호르몬 부착 단백질)를 증가시키는 방법
3) 안드로겐이 말초에서 활성화되는 것을 억제하는 방법
4) 안드로겐이 목표 장기에 작용하는 것을 막는 등의 원리로 작용합니다.
치료 효과에 관한 근거에 기반한 임상 데이터는 현재까지 많이 부족한 실정이나 사용 가능한 치료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Topical eflornithine
13.9% elofrnithine 크림 (Vaniqa, 바니카 크림)은 원치 않는 안면 모발 성장에 대한 국소적 치료제로 승인받은 약제입니다. 모낭 내부에서 세포 성장과 분화에 필수적인 폴리아민(polyamine)의 합성을 억제함으로써 모발의 성장을 억제합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판매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속적인 도포로 모발 성장의 감소를 기대할 수 있으나 광범위하게 사용할 경우 전신적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어서 얼굴 이외의 부위에 대해서는 승인되지 않았어요. 또한 비용도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단점이죠.
안드로겐 과다-다낭성난소증후군 학회(AE-PCOS Society)에서는 elornithine의 사용을 경미한 다모증에서만 단독 요법으로 사용하고, 중증도 이상의 환자에서는 영구적 제모술 또는 전신적 약물 치료의 병합 요법 정도로만 사용을 권하고 있습니다 (Escobar-Morreale et al., 2012).
2) 복합경구피임약 (Combined oral contraceptive, OCP)
다모증 치료에 수십 년 동안 사용되어 온 치료제로, 여러분 중에서도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는 경우 산부인과에서 자주 처방 받아보셨을 거라 익숙하실 거에요. 작용원리는 뇌하수체에서의 성선자극호르몬(Gonadotropin)의 분비 억제를 통해 난소에서의 안드로겐의 합성을 억제하고 에스트로겐 성분이 SHBG 합성을 증가시켜 유리 테스토스테론 free-testosterone의 농도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항안드로겐성 프로게스틴이 포함된 경구용 피임약의 경우 포함된 프로게스틴이 모낭에서의 안드로겐 수용체에 경쟁적으로 결합하거나 5 alpha-환원효소의 활성을 억제할 수 있어요. 따라서 경구피임약에 대한 일반적 금기 사항이 없는 다모증 환자에서 안드로겐 활성이 낮은 3세대 프로게스틴인 데소게스트렐Desogestrel, DSG, 제스토덴Gestodene, 노르제스티메이트Norgestimate, 또는 항안드로겐성 프로게스틴, 초산사이프로테론 cyproterone acetate, CPA, 드로스피레논 drospirenone, DRSP 등을 함유한 저용량 경구용 복합 호르몬제가 흔히 권장됩니다. 게다가 피임 효과까지 있으니 젊은 가임기 여성에서는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죠.
3) 항안드로겐 제제
항안드로겐 제제는 안드로겐 수용체 및 5a-환원효소의 활성을 억제함으로써 작용합니다. 여러 항안드로겐 제제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기는 하지만, 수행된 연구의 방법적 한계로 인해 근거의 수준이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에요. 미국에서는 항안드로겐 제제의 다모증에 대한 사용은 승인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남성 태아의 여성화 (pseudohermaphroditism)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임신한 여성에서는 사용 절대 금지! 가임기 여성의 경우에는 임신이 되면 안되니깐 경구피임제, 자궁내장치 또는 난관 결찰 등과 같은 안전한 피임법을 함께 사용해야 합니다.
초산사이프로테론 cyproterone acetate은 강력한 프로제스틴이자 항안드로겐으로 LH 감소를 통해 혈중 테스토스테론과 안드로스테네디온의 농도를 떨어뜨리고 말초에서는 안드로겐의 활성을 억제합니다. 가능한 부작용으로는 부신기능부전과 성욕 감퇴!!!가 있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사용 가능하지만??? 미국에서는 사용 불가입니다.
4) 인슐린 감수성 개선제 (insulin sensitizer, IS)
인슐린 감수성 개선제에는 대표적으로 Metformin이라는 인슐린 치료제가 있죠. 이는 다낭성난소증후군 환자에서 월경주기의 불규칙성을 개선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고인슐린혈증은 간에서의 SHBG의 합성을 억제함으로서 유리 테스토스테론을 증가시키고 난소 난포막 세포의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1(insulin-like growth factor-1, IGF-1) 수용체에 결합하여 LH 자극에 의한 안드로겐 합성을 증가시켜서 고안드로겐 혈증을 유발해요. 그러나 다모증 치료에 있어서는 인슐린 감수성 개선제의 사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고 실제 치료 효과가 그닥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5) 성선자극호르몬 분비호르몬 장기 작용제 (Long acting GnRH analog)
아직 다모증에 대한 치료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한 근거가 부족합니다. 또한 안드로겐과 더불어 에스트로겐의 분비도 줄면서 혈관운동성 증상(얼굴 화끈거림, 홍조), 골밀도 감소 등의 위험성이 있어 에스트로겐 보충 치료(add-back therapy)와 함께 쓰는 것이 권장됩니다. 기존의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심한 고안드로겐증성 다모증 환자에서 2차적 치료법으로 제한하여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여요.
6) 부신피질호르몬 (Glucocorticoid)
이는 부신에서의 안드로겐 합성을 억제해서 다모증을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효과는 복합 경구피임약이나 항안드로겐 제제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보여요. 또한 투여 용량이나 방법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전형 선천성 부신과증식증 환자에서 항안드로겐 치료의 중단 이후 부신피질 호르몬제를 투여할 때 질환의 관해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요.
7) 케토코나졸 (Ketoconazole)
항곰팡이 치료제인 케토코나졸은 스테로이드 합성의 여러 단계에서 효소 억제제로 작용합니다. 부신과 난소에서의 안드로겐 합성을 억제하면서 고안드로겐 혈증을 감소시켜요. 그러나 부신에서의 부신피질호르몬 합성을 억제하여 부신성 위기(adrenal crisis)를 일으킬 수도 있어서 케토코나졸을 다모증 치료제로 장기 사용하는 것은 안됩니다! 쿠싱 증후군 Cushing syndrome 환자에서 최종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임시적으로 사용하는데 국한됩니다.
*** 결론적으로 5), 6), 7) 세 가지 약제는 치료 효과 및 안전성 면에서 다모증의 1차적 치료법으로 권고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