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진단서를 끊던 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by 써노의하루일기

목요일에 계단에서 밀었는데, 금요일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돼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와 이야기 나누고, 책 읽으며 잔잔한 오전을 보내다가 학폭 신고를 위해 진단서를 끊으러 갔다.


며칠 전에 허벅지를 맞아서 시퍼렇게 피멍이 들어온 아이의 다리를 보며 진단서를 끊으러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선생님이 며칠 더 지켜봐 주신다고 했으니 믿고 기다렸었지만.. 끝끝내 상해의 증거로 남기게 되다니.


불과 2일 만에 다시 진단서를 끊으러 갔지만, 애석하게도 멍은 그 자리 그대로 붉고 푸르게 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야 심각하게 알아봐 주다니.. 그저 미안했고, 화가 나서 밤마다 눈물만 흘렸다.


전치 2주의 진단서를 받고 나와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한참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학교폭력을 담당하는 선생님이셨다.


전치 2주 이상의 진단서가 있을 때에만, 가해자와 5일간의 분리가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날이 금요일이라, 분리를 요청하려면 진단서를 오늘 가져다줘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어보셨다. 당연히 간다고 이야기한 후, 분리조치 신청서를 작성하고 왔다.


그날 학교에서 학생 작성 확인서와 학부모확인서를 받아왔다. 학생 사실 확인서는 되도록 아이의 자필로. 보호자 의견서는 부모가 작성하면 된다.





학생 사실 확인서에는 사실 관계를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적으면 된다.


보호자 의견서에는

- 사안 인지 경위

- 현재 자녀의 상태

- 교우관계

- 학교폭력 경험 유무 및 내용

- 자녀 확인 내용

- 현재까지의 보호자 조치

- 사안 해결을 위한 관련 정보 제공

- 현재 보호자의 심정

- 본 사안 해결을 위한 보호자 의견, 바라는 점


을 항목별로 적으면 된다. 학교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다고 하니, 학교에서 제공하는 형식에 맞춰서 적으면 된다.





다음날 바로 제출해 달라고 하셨기에 급히 작성했는데, 작성 전, 아이와 가해자 A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이 과정도 아이에게는 되게 폭력적인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냥 아이를 감정적으로 위로해 주는 부모가 아니라, 사실 관계를 먼저 파악하려는 성향의 부모인지라 집요하게 아이의 상처를 들춰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정말 안쓰럽고, 짠하고, 속상했지만, 의외로 되게 화도 났다. 왜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말을 안 한 걸까, 학기 초부터 그 아이와는 거리를 두라고 누차 이야기했음에도 계속 붙어 지내더니 이게 뭔가. 사랑을 충분히 주며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왜 아이는 이렇게 혼자 버티고 있었을까. 부모에 대한 믿음을 부족하게 줬던 걸까. 등등..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죽도록 미치게 사랑하는 내 아이가 이지경이 될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나에 대한 분노였다. 근데 그걸 아이에게 화를 냈으니 지금 생각해도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






학폭 사안이 워낙 많으니, 보고서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을까 걱정되어 최대한 간결하고, 감정을 빼서 사실 위주로 적었고, 나눠준 종이에 자필로 쓰지 않고, 워드에 작성해서 프린트해서 제출했다.


표로 타임라인을 만들었고, 피해 사진을 첨부했다. 정말 아이에게 몇 번이나 묻고 물어서, 앞뒤 상황을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말이 바뀌지 않는 사실만을 적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적었는데도 2페이지를 넘어갔다. 억장이 무너졌다.





가해자 A는 월요일에 나오지 않았고, 학생확인서도, 보호자 확인서도 모두 제출했으니 이젠 아이가 안전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이 정도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1화 보러 가기

https://brunch.co.kr/@chltnwls135/44



3화 보러가기

https://brunch.co.kr/@chltnwls135/46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맞폭, 그 순간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