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그냥 하는 거야 훈련이나 교육을 받는게 아니야.

산책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개. 2m 줄이 무슨 소용이람.

by 송아

독 트레이너로 클래스 준비를 하면서 친구에게 시범 강의를 해 본 적이 있었다.

강의 평가서 마지막 질문이 더 듣고 싶은 강의 주제가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이었는데 '산책 교육'을 원한다는 답변이 왔다. 나도 산책을 가르치려 했던 사람이라서 무슨 마음인지는 단박에 알았다.

산책을 즐기다 얼굴에 행복이 묻었어

하지만 앞으로 내가 강아지에게 산책 훈련이나 교육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산책은 즐기는 것이지 공부해야 할 것이 아니다.


밖에 나가서 한숨 돌리며 경치를 바라보고 걷고 쉬는 것이 산책이다. 산책을 하며 줄 맞춰 긴장하며 걸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강아지가 행진을 하기를 바란다.

좋아서 이리저리 뛰는 개를 보며 말을 듣지 않는 개라고 해서 이래저래 가르쳐보라고 한다.

군견처럼 걷는 개를 보고 부럽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가르쳐서 개가 나아졌냐 하면 보통은 조금 나아졌지만 결과적으로 제대로 해결되지는 않았다고들 한다. 효과 있다는 줄을 써도 잠시뿐이다. 오히려 점점 상황이 나빠지기도 한다.


강아지 산책이 이런 색을 띠게 된 것은 산책 훈련의 시작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 훈련의 뿌리는 사역견 훈련이었다.

군견 경찰견 같은 '일을 하는 개, 사역견'. 이들은 임무를 위한 교육을 받는다. 어릴 적부터 교육받은 그대로 일을 하는 게 몸에 배어있는 개. 사역견의 걷기는 자유분방하면 안 된다. 그래서 걷는 훈련을 받는다. 이들이 하는 걷는 훈련을 산책에 가져온 것이 산책 훈련이 되겠다.


국어사전에서는 산책을 간단히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라고 말한다.

행군이나 행진은 '군대가 줄을 맞춰 이동하는 일'이다. 걷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 많이 다르다.

그러니 산책에 걷는 훈련을 가져와서 앞뒤가 맞길 바라는 것은 무언가 이상한 것이다.


의외로 강아지 산책은 충분한 산책량을 확보해주고 보호자와 유대관계가 끈끈하면 별 탈 없는 경우가 많다. 대화하며 공원을 걷듯 걸으면 된다. 애써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면 오히려 예민해지고 원치 않은 행동이 나올 수도 있다.


예전에는 매일 많은 시간을 어르신과 함께 공원에서 보내며 천천히 걷는 강아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리드줄을 하지 않아도 마치 블루투스 리드줄이라도 있는 것처럼 주변에 동요하지 않고 보호자 곁에서 걷는 강아지들이 꽤 흔했다. 지금은 그런 강아지를 만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보니 나부터 나의 산책을 즐긴 게 언제 적인지 모르겠다. 나는 산책을 즐길 줄 잘 모른다.

뜀박질을 하러 헬스장에 가고 출근길에는 자가용을 타서 요즘 날씨에도 두꺼운 겉옷을 잘 입지 않을 지경이다.


그러니까 나의 온전한 산책조차 잘 못하던 내가 강아지를 산책시킨다고 나가서 군견처럼 걷기를 원했으니, 잘못되어도 한참을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 강아지 산책 줄 길이가 2m로 제한이 되었다고 한다. 계속해서 개물림 사고가 터지고 갈등이 일어나니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제제를 가한 것이다.


분명 줄을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다. 줄을 해도 사고가 난다. 물리적인 제제만 취하면 오히려 장벽 불만이라고 불리는 무언가에 의해 다가가지 못할 때 미친 듯 짖으며 달려드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아마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부터 의무적인 나가서 걷기가 아닌 진짜 산책을 되찾자.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하자.


아마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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