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작
바람 한 점 없는 곳에 나무의 숨결이 걸렸다
속을 헤아리는 주술사의 의식처럼 맥을 짚어가는 책등마다 그을린 속이 보인다 찢어진 낱장을 읽어보면 왈칵 쏟아지는 풋내,
실은 아주 오래된 씨앗들이 행을 짓다 만 흔적이다
봄물처럼 번져간 활엽의 주름에도
아지랑이만 피운 손의 순례들
큰마음 먹고 뒤적이면 오백 년 넘었다는 후박나무의 깨진 활자도 보인다 밑줄 그어둔 문장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둥지를 버리고 날아간 새들의 시간,
원시림에는 숨겨둔 그늘도 깊다
칸칸이 박제된 울음을 뱉어내는 나이테는
서체도 없이 똬리처럼 감겼다
잎이 지는 방향으로 손을 뻗으면 아슬한 등고선마다 걸리는 옹이들 밑동은 줄기의 푸른 기억을 읽으려 했다
햇살 이고 가는 박새만 아는 체를 하는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