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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Oct 01. 2024

우리는 언제 이렇게 늙어왔을까

2024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작

우리는 언제 이렇게 늙어왔을까


최형만


               

허리를 굽히면 등이 아팠다

조금씩 닳은 뼈가 중심을 벗어나는 거라고

의사는 진통제를 주면서 말했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보다

누울 때의 자세에는

나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것들이 많았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것들은

언제나 몸통보다 먼저 자랐으니까


봄꽃이 쉽게 피지 못하는 건

침실 위로 얼어붙은 계절이 덮쳤기 때문이라고

허물을 벗지 못해 납작해진 거라고


꼬리는 어물어물 말꼬리를 흐렸다

넌 붉은 깃발로 펄럭이던 날을 기억하니?


그날 내 심장은 몇 배나 빨리 뛰었어

불안할 땐 가슴도 굽실거렸지

누군가 내 등짝을 봤다면 꼽추라고 놀렸을 거야


레지스탕스의 깃발은 늘 푸른 줄만 알았거든 나는 편식하듯이 청색시대를 골라냈지 푸를 ‘청’은 그대로라고 자신만만했으니까


오래된 날을 움켜쥔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가장자리에서 펄럭이는 새하얀 깃발들


등이 아프면 허리를 펴는 거라고

의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통증도 이제 자리를 찾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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