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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Oct 01. 2024

알비노*

2024 전북일보 신춘문예

알비노*


최형만



빛을 본 적 없는 이들의

텅 빈 거리는, 마른 종이 같다

해질녘 길에서 엎드린 사람은

하얀 얼굴로 꿈을 꾼다지

바람이 숨죽여 우는 것처럼

엎질러진 노을의 흔한 표정도 없이

저녁도 하얗게 지는 거라지

빛의 소란을 평정하는 백색의 밤

통증으로 휘어진 길목마다

몽롱한 회색빛 언어가 따라왔다

불면은 몸의 바깥이어서

색을 찾아가는 혈류에 잠기면

먹구름도 무지개를 그릴 텐데,

뜨겁게 타오른 바람이 굴절되고 있다

한 떼의 컬러가 증발할 때마다

멘델이 나누는 우열의 방식은

멜라닌 색소로 흘러드는 새하얀 비명들

그늘로 가는 누군가를 보면

투명한 홍채로 걸어간 순례처럼

바짝 끌어당긴 어둠을 안고 있다

붉어지는 방향으로 몸을 트는 동안

진짜 꿈을 꾸고 싶은 사람들

작은 온기에도 날마다 타고 있다



* 유색 동물에서 날 때부터 피부나 머리카락, 눈 따위의 멜라닌 색소가 없거나 모자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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