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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Oct 01. 2024

바람 몸살

계간 『아토포스』 여름호

바람 몸살


최형만



유리컵이 예뻐서 작은 화분을 샀다

주인은 바람 한 점 없어도 잘 자랄 거라고 했다


물을 줄 때마다

움트는 꿈들


그런 날엔 지하에서도 열심히 기도했다

받침대에 물이 넘치는 날이면

미로 같은 길을 흘러온 나

나는 언제나 그런 식물의 체위가 궁금했는데


작고 가벼운 씨앗은 어떻게 자랍니까?


바닥이 마를 때면 나도 따라 몸살을 앓았다 

씨앗이 없어도 꽃 피우는 벽지처럼

낡은 무늬가 바람을 들일 때면


풍경은 오래전에 보았던 바깥을 닮았다

낮은 곳에 사는 것들은

종종 나와 맞서길 좋아하고

절반의 햇빛에도 그늘을 찾아다녔다


구석진 곳에서도 잘 자라는 먹구름처럼

그게 그들의 재능일 테지

반지하는 바람이 없어도 자꾸만 흔들렸고


그때마다 나는 몸살을 앓는다

그것참,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잠깐 다녀간 졸음에도 기분은 좋아지고


바람 한 점 없이도 잘 자라는 땅속 같은 집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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