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학춘추』 제127호(여름)
갈대가 키워낸 바람은
지구를 몇 바퀴나 돌고서야 돌아왔다
움켜쥐지 않아서 가벼운 몸이
슬쩍 빈자리를 엿본다
공중에 집을 짓던 거미가 먹구름을 살필 때마다
바닥부터 쓸어가는 바람
지상에 깃털을 떨구는 것들은
떠도는 혈통이라서
풍향이 바뀌면
새들이 먼저 날아올랐다
구멍 숭숭한 잎에게 길을 물으면 거미줄 사이로도 바람은 각을 세웠다지 현을 켜듯 계절을 조율했다지 뿌리를 흔들다 우듬지까지 내달렸다지
웅덩이에 달그림자 내고서야 바람은 빗장을 걸었을까
지구 반대쪽에서 길을 물으면
그늘의 힘으로 오는 것
그림자 없이도 자꾸만 흔들리는 게 있다
그런 날엔 내 안에도 몇 개의 바람이 자랐을 것이다
갈대가 키워낸 바람은
돌아와 밤새 몸살을 앓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