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다층』 2024 7월 여름호
한 문장만 읽어도 도지는 병
나는 오랫동안 그랬다
숨바꼭질 속 술래가 되어 이 말 저 말을 찾아다녔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다니던 나는
어딜 가나 한 사람이 따라왔고
그때마다 꽁꽁 숨은 너에게 했던 말
멜랑꼴리한 각본은 그렇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등을 떠미는 바람으로 걸어가는 말
거식증이 명치를 누르고
한 움큼 도진 병이 사방으로 흩어진 거리
버려도 버려도 주머니는 가득해서
언젠가 네가 했던 말을 찾아다녔다
가야 할 길과 지나온 길을 되짚다가
남겨진 사진을 확대하면
인사하는 조각상, 그리팅 맨
가장 겸손한 인사는 15도로 숙인다고 했다
그러니 너도 인사 좀 해봐
뭐 어때?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머리를 조아려 너에게 인사를 했다
두고 온 말이 그제야 떠오르고
언젠가 내가 했던 말 너도 기억할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거기에 있다는 걸 기억하는 거라고
헤이리 마을의 그리팅 맨처럼
우리는 그렇게 늙어갈 수도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