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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Oct 01. 2024

언젠가 했던 말 기억할지 모르겠다

계간 『다층』 2024 7월 여름호

언젠가 했던 말 기억할지 모르겠다


최형만



한 문장만 읽어도 도지는 병

나는 오랫동안 그랬다

숨바꼭질 속 술래가 되어 이 말 저 말을 찾아다녔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다니던 나는

어딜 가나 한 사람이 따라왔고

그때마다 꽁꽁 숨은 너에게 했던 말


멜랑꼴리한 각본은 그렇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등을 떠미는 바람으로 걸어가는 말

거식증이 명치를 누르고


한 움큼 도진 병이 사방으로 흩어진 거리

버려도 버려도 주머니는 가득해서

언젠가 네가 했던 말을 찾아다녔다


가야 할 길과 지나온 길을 되짚다가

남겨진 사진을 확대하면

인사하는 조각상, 그리팅 맨


가장 겸손한 인사는 15도로 숙인다고 했다

그러니 너도 인사 좀 해봐

뭐 어때?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머리를 조아려 너에게 인사를 했다


두고 온 말이 그제야 떠오르고

언젠가 내가 했던 말 너도 기억할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거기에 있다는 걸 기억하는 거라고

헤이리 마을의 그리팅 맨처럼

우리는 그렇게 늙어갈 수도 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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