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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Oct 01. 2024

끝물, 아포리아*

계간 『아토포스』 여름호

 끝물아포리아*


  최형만



  허방에 빠진 날을 기억해요

  헤어나려는 몸부림에도 조용히 미끄러지고

  떨림에 순해지는 나는


  이제 바닥 같은 그런 말을 알아요


  ‘끝’이라는 말을 발견했을 때부터

  정말 끝으로 밀려난 적 있습니다


  막다른 길에 들어선 꿈도 끝물 같았죠 어룽대는 그림자에 눈뜰 때까지 끌려가는 막판처럼, 그러니까 나는 굶주린 짐승이 되거나 길들 수밖에요


  길을 잃을 때마다 돌아올 배후처럼

  없는 길을 그려왔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인사하다가


  웅성거리며 기도하는 사람들

  울리지 않는 교회의 종소리를 생각하면서

  내게 남은 것들을 더듬어봐요, 그건


  뭍에 오른 물고기처럼

  숨이 차는 일


  간단히 말할 수 없는 날이 있습니다


  혼자인 나는 목격자가 없어 끝물일까요 바람벽도 없이 들썩이는 밤마다 파닥이는 아가미 다 떼어내고, 비린내 나는 그런 밤으로


  조용히 밀려났다 돌아온 적 있습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침묵하는 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바닥을 배운 나는


  모르는 길도 잘 아는 것처럼

  이제 뭐든지 척척


  용감하게 혼자 걸어가는 이 세계가

  조금씩 좋아지려고 해요


  

  * 사물에 관하여 해결의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이나 논리적 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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