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 율 Oct 22. 2023

식사 벌레

-노을이와 연두-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났다.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익숙하지 않다.

비교할 뭣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생선 썩기 시작하는 냄새와 갓난아기 설사똥 냄새 그 중간 정도 라고 생각했다.

기침을 하자 밤새 말랐던 입안에서 마른 가래가 목구멍을 삐져 나왔다. 

마른 시멘트 바닥에 비가 내려 3분쯤 지났을때의 그 냄새도 2할은 섞여 있는 듯...

집안을 둘러 보았다. 쓰레기봉투가 엎어졌나?

생선을 좋아하는 막내놈이 밥을 먹고 그릇을 안덮고 갔나?

이런저런 생각에 냄새가 진해지는 곳을 따라 코를 벌령거려 따라갔다.

금속탐지기의 '삐' 소리가 최고조에 이르는것처럼 순간 눈앞에 노을이 연두의 플라스틱

집이 보였다.


깨끗하기만 했던 그들의 공간.

하루종일 눈만 뜨고 움직임은 거의 없는 인형같은 녀석들.

그들의 집이 온통 시커먼 분뇨와 가래같은 분비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희귀동물 키우는것을 좋아하는 아들놈이 몇달전 입양한 '팩맨' 개구리다.

자박자박 깨끗한 물안에서 심술맞은 자태로 엎드려만 있던 개구리들에게

나는 '연두' '노을' 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아들놈은 그 이름이 좋았는지 집에 들인 이후로 "연두야~노을아~"로 불렀다.

양서류 특유의 두꺼비 같은 등과 머리엔 특유의 모양과 색깔이 퍼져있었다.

연둣빛을 띠는 놈에겐 '연두' 서쪽하늘 구름을 가르는 낙조빛을 띤 녀석에겐 '노을'이라

붙여줬었다.

그런 그들의 보금자리가 지금 엉망인것이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역시나 차가운 말투

"노을이연두 집이 엉망이다!" 

나는 집안에 바퀴벌레가 나타났다는 투로 긴박하지만 덤덤히 말했다.

"어제 쭌이가 애들 밥을 많이 줬나봐"

"그래?...이거 어떡해..."

나는 치워야 된다는걸 알지만 청소 노하우를 몰라 그렇게 물었다.

"그냥 나둬 쭌이 오면 지가 치울거야."

"냄새가 장난 아니다."

" 그럼 청소하던지...알아서 해!"

아내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그들의 투명한 집을 쳐다 보았다.


이 형제?의 의무는 무었일까?

우리집에 온 목적은 무었인가?

단지 관상용인가? 그렇다면 삼일에 한번 정도 죽었나 살았나만 확인하는 나는

지금 이들의 집을 청소해 줘야 하나?

강아지처럼 반기지도 않고 애교도 없다. 

어항속 물고기처럼 화려한 공연을 하지도 않는다.

가끔 나타나 눈앞에 알짱거리다 합장 한방에 가버리는 모기처럼 짜릿한 살생의 즐거움도 없다.

도대체 너의 임무는 무엇이냐?

짧은 생각안에서도 냄새는 계속 났다.

이 집 청소당번은 나다.

청소기 돌리기와 물청소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 음식물쓰레기 처리.

집안 구성원으로 경제적 의무를 다 하지못하는 지금의 나로선 연체이자 갚듯.

하루 루틴이 되어 버렸다.

청소엔 냄새도 포함 된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집에서는 늘 평균적인 익숙한 냄새만 나야한다. 가족의 코가 그렇게 세팅 되어있다.

이런 상황에 예고 없이 이들이 등장 한것이다.

휴대폰을 들어 '팩맨' 청소방법을 검색했다.

별거 없다. 

단지 물청소 후 턱선까지 물높이를 채워줘야 한다고 어느 블로거가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노을이 연두' 집을 청소했다.

그리고, 언젠가 아들놈이 하는것처럼 집옆에 있는 밀웜통에서 소리없이 꿈틀거리는 벌레를 잡아

팩맨의 주둥이에 갖다 댔다.

깨끗해진 집안에 기분이 좋았는지 노을이가 밀웜을 덥썩 물었다.

연두는 입맛이 없는지 식사를 거부 했다.

이들의 존재이유눈 무엇일까? TV에서나 봤던 양서류의 먹이 낚아채는 연기.

그걸 눈앞에서 보는 신기한 경험 제공?

바닥의 물기를 닦은 후 집을 나섰다.


세무서에 들리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예상보다는 이르게 정환이에게 전화가 왔다.

특유의 인사.

"예..감독님..식사 하셨어요?"

"어...김감독..밥 먹었어? 나는 김감독이 식사전이란걸 알고 있다.

"아뇨...이제 먹어야지요.."

"어...그래...이따 잠시 들릴게"

"네...전화 주세요."

역시나 서로 해야 할 말과 듣고 답을 줘야 할 내용은 생략 한 채

전화를 끊었다.

정환이는 편집감독이다.

단편 한편을 만들어 놓고 비지니스 실패로 자고 있는 영화를 며칠 밤을 새서 편집했다.

내 사정을 알기에 편집비 얘기는 서로 안하고 있다. 

여러가지로 민폐다. 나는

세무서에 가서 또 아쉬운 소리를 해야 되는데 가기도 전에 또 분량이 늘었다.

해결책 없이 미적되는 상황.


며칠 전 정환이는 술자리에서 

"감독님, 영화는 너무 추상적 입니다. 통로가 보여야 되는데 겉돌기만 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말없이 정환의 눈을 뱀처럼 노려 봤다.

"아니...그래서 장르지만...!"

한마디만 더하면 내가 어떡해 할지 잘 아는 그가 거기서 차선을 바꾼다.

"그래서, 일단 접었잖아..피해는 최소화 하자고..." 

"......"

"다음달 까지 일부는 해결 할테니까..너무 그러지 말자" 나는 또 미룬다.

"아줌마. 이슬이 하나 더요!" 정환이가 카운터에 손을 들고 외쳤다.

"그냥..교육청 일이나 더 하세요.."

순간 직진 하려던 내 오른손이 내 왼쪽뺨으로 유턴 했다.

"알았다. 김감독, 맞아 홍보나 해야지... 근데 말이야 이 새끼야 난  그게 좋아!"

나도 정환이도 그 이후로 영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세무서 직원이 내려왔다.

A4용지 몇장을 펼쳤다.

부가세와 여러가지 연체. 그리고 독촉장까지 펼치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이미 다 안다고 이 친구야.. 그러니까  언제 까지 봐 줄 수있는거냐고...

더 이상 물러 날 곳이 없다. 변명도 안 통한다.

나라에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한다.

니 사정 따위는 개나 줘 버려라.

한참 동안 설명하던 M자 탈모가 시작된 젊은 직원이 다시 물었다.

"우선, 카드로 일부 상환 하시고...분할 납부도 생각 해 보시죠..."

"그건 아는데  지금  내가 상황이...."

세무서 직원은 서류를 보는 반쯤 숙인 내 머리를 보았는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근래 심한 스트레스로 머리가 많이 빠졌다.

"다음주까지 알아보시고 연락 주세요.  이게  기한이라는게 있어서요.."


세무사직원은 그렇게 일어나서 갔다.

정환이에게 갈지 사무실로 갈지 정하지 못 한채

천천히 세무서를 나왔다.


하루종일 서류들을 정리했다. 세금과 납부독촉장, 그리고 카드명세서

볼수록 한숨만 쌓이고 주름이 늘어갔다. 분명 잔주름이 많이 생겼을것이다.

정환이를 만나기로 했다.

주차장 입구를 빠져 나와 강변을 탔다.

초가을의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마치 내 잠자고 있는 영화처럼

재밌지도 재미없지도 않게...

작은 강, 그 주변 아직은 푸른 나무가 겸손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 서쪽하늘로 노을이 지고 있다.

그 조화로운 색이 마냥 이름다웠다.

"오늘따라. 노을이 예쁘네..." 혼잣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문득 아침에 본 '연두','노을'이가 생각났다.

존재의 의미를 몰랐던... 

'노을' 과 '연두'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막혔던 도로위에 여유가 생겼다.

나는 서쪽 낙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전 03화 식사 벌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