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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Oct 22. 2023

식사 벌레

-간헐적 투명인간이 될 시간-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긴 시간을 돌아 겨우 새는 바가지는 막았지만 앞으로 또 어떤 바가지가 샐지 모른다.

아내의 포기는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다.

'이만큼 했으면 난, 다했어

당신 참 불쌍해."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 갈 준비를 하는 아내는 거의 남이 다 되었다.

말투에서 분노도 원망도 모두 희석되어 아나운서처럼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에 칼날 같은 서늘한 욕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일 베란다 짐 정리해 놓을게" 이 정도의 대답을 했다.

톤이 높거나 감정을 실으면 또 한바탕 불꽃이 튀니까.

모두 버려야 하는 지난날의 과오가 담긴 찌그러진 종이박스들.

그 안엔 뭐가 들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아마도 뜬구름, 시행착오, 게으름, 그리고 주제파악도 못한 글 꾸러미들.

그런 것들이 한심하게 쌓여 있겠지.


"청소기나 좀 돌리고 나가~ 그건 잘하잖아"

그래 내가 청소는 잘하지 구석구석.

곧 떠나게 될 이 집구석은 쓸데없이 넓기만 했다.

내 인생의 한 일억 분의 1은 설거지와 청소기 돌리는 시간이 차지하는 것 같았다.

청소기는 힘차게 돌았다.

바닥에 살포시 내려앉은 강아지털, 딸의 긴 머리카락, 옷가지에서 탈락한 섬유 조각들

그리고 식탁아래 크고 작은 식사 잔해들.

모두 톱상어의 주둥이를 닮은 청소기의 흡입구가 지날 때마다 사라졌다.

아마 얼마 후엔 저 먼지들처럼 나도 이 집에서 사라지겠지 흔적 없이.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다.

본능적으로 청결함을 추구한다.

내 몸이 내 주변이 그리고 관계자들이.

그래서 눈앞에 더러움이나 위험함이 다가오면 피한다.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그만은 폐기물이나 플라스틱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알려하지 않는다.

오직 나와 내 주변이 깨끗하면 그걸로 끝이다.

몇 해 전 도시공사 홍보영상을 찍으러 쓰레기 종말 처리장에 갔던 나는

아직도 그 표현할 수 없는 냄새와 규모에 적잖이 놀랐다.

지옥이었다.

환경의 위협은 보이지 않게 더디게 우리 삶의 숨통을 옥죄어 오고 있다.

다만 모를 뿐이다. 이기적인 인간은 모른 척하거나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불가항력.

이 집에서 지금의 나는 불가항력이다.


투명 플라스틱통 안에 모인 먼지의 반 이상은 모두 강아지 '쿠나'의 털이다.

저도 그걸 아는지 미안한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며칠 전 아내와 차를 바꿨다.

아내가 7년 정도 출퇴근 용으로 탄 경유차는 소음도 심해졌고 소형이라 좁고 불편해 보였다.

그래도 아내는 그 차가 좋다며 계속 탄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그러니까 내가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기 전까지.

"연비 좋은 차가 좋겠어."

"뭔 소리야?" 아내가 물었다.

"세원형이 휘발유차 보다 경유가 싸고 연비도 좋지 않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내차랑 니차랑 바꾸는 게 어때?"

"하~당신 그 와중에 또 머리 쓰는 거니?"

진짜 놀란 내가 되물었다

"그게 뭔 소리야?"

"너 그거 할부 몇 달이나 냈어?"

"요즘에 그니까 몇 달 못 냈지...."

"그래서 이제 아예 차 가져가고 할부도 다 내라 그거네..."

와이프는 계산이 빠른 여자다. 금융 업계 15년 장기 근속자.

나는 그런 저의가 결코 없었는데 뜻밖의 해석에 당황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차 연비보다는 이게 좋으니까..."

"알았으니까.. 내일 차 짐이나 정리해 내 건 내가 할 테니까...."

마누라는 결정도 빠르고 확고하고 아무튼 속전속결이다.


사업이 꼬이기 전 그러니까 우리 부부사이에 별 문제가 없던 몇 년 전

회사에 사표를 낸 후 퇴직금과 얼마 있던 돈으로 타고 싶었던 SUV를 샀다.

아이들도 크고 강아지도 있고 짐 싣고 어디라도 가려면 큰 차가 필요했던 이유다.

형식적인 고사도 지내고 나름 아꼈던 차. 그 차를 아내에게 넘겨줬다.

그렇게 우린 차를 서로 바꿨다.



저녁을 먹고 번화가로 나갔다

술집이 밀집된 00동 세원이 형을 만나는 장소다.

차를 대고 대리운전 어플을 켰다.

아직 이른 시간 휴대폰 플랫폼 속으로 출근했다.

하루 예닐곱의 대리를 타면 20만 원 정도 번다.

2인 1조로 운행하다 보니 연료비를 제하고 둘이 나누면 하루 6,7만 원을 버는 셈이다.

세원이 형은 투잡이다.

얼마 전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되어 시간이 많다고 했다.

주식으로 몇 억을 손해 보고 복구 중인데 나만큼 힘들어 보인다.

대리운전을 할 사람은 아닌데...

내가 보기엔 그렇다.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이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두 사정이 있고 사연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형과는 궁합이 맞아 별 트러블 없이 지내는 편이다.

내가 손님차를 타면 형이 날 따라와서 픽업한다.

형이 좋은 콜을 잡으면 내가 형을 따라가는 방식이다.

젊은 대리기사들은 휠을 타거나 킥보드로 혼자 일을 한다.

그래야 돈이 된다.

아무튼 오늘도 무사히 돈을 벌어본다.

음주운전 벌금이 강화되고 적발 시 사회적 지탄을 받기에 대리운전 시장 또한 경쟁이 심해졌다.

온라인 위치기반 서비스 플랫폼이 많아졌다.

그만큼 기사들은 나눠먹기식의 노동력 전쟁터에 나간다.

운전이 대단한 기술은 아니지만 시간과 기회비용 제공 그리고 안전 귀가까지

메뷔우스 띠처럼 서로 얽혀있다.

밤의 공생.


" 식사했어요?" 담배를 피우며 다가오는 형에게 인사를 한다.

"응.. 식사했지?

"네."


콜이 떴다.

00동에서 00동까지~

첫 손님이 중요하다 경험상 일이 이어지는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다.

일의 연계성. 오지에 들어가면 빈차로 나오게 된다.

낭비다. 시간낭비, 기름값 낭비 그래서 전략적인 선택이 중요하다.

물론 매번 뜻대로 안 된다... 선택의 폭이 좁다. 경쟁자도 많다.

인생처럼 잘 풀리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다.




영화의 시퀀스라면 운전하는 내 모습은 그대로 픽스된 채 조수석이나 뒷좌석의

손님만 연속으로 바뀔 것이다.

하룻밤 사이 등장하는 카메오 인물들

휴대폰을 보는 사람, 입 벌리고 자는 아저씨, 눈을 감은 젊은 여자.


대본도 없고 지문도 없지만 정말 리얼한 상황이 연출된다.

정말로 다양하고 독보적으로 예측 불허다.

컷을 나눈다면 아마 운전하고 있는 내 클로즈업 표정이 리액션할 것이다.

웃거나, 찡그리거나 걱정스럽게...


고급 외제차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젊은 친구들이 보인다.

내가 다가가자 젊은 여자가 차 리모컨을 누른다.

언제나 그렇듯 건조하게 차에 올라 시동을 켠다.

뒷좌석에 두 명, 앞자리에 차주로 보이는 여자.

운행이 시작된다.


오늘의 주제는 뭘까?

역시나 술집에서 있었던 상황들의 썰을 풀기 시작한다.

헌팅남에게 순간 빠질 뻔했다는 얘기

화장실 갈 때 휴대폰을 왜 들고 가야 하는지

하이볼, 폭탄주, 돈계산, 등등

돌아가며 언성을 높인다.

운전하는 나 따위는 이미 출발 후 10초 이후부터 안중에 없다.

그렇게 20여 분 동안 간헐적 투명인간이 된다.


아내는 대리운전을 하지 말라고 했다.

측은지심인가?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소문이 날까?

대리운전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잘 나가는 감독인 줄로만 아는 지인들이 알면

자기 포지션에 한 꾸러미 소문이 날까 봐 걱정을 하는 것일까?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싫다고 했다.


도착 후 손님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다시 투명망토가 벗겨지며

내 모습을 찾는다.

마음에 굳은살이 굳혀진 지 오래다. 없는 사람 취급받는 게 얼마나 엿같고

우울한 상황인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말 걸기도 그렇고 이미 그렇게 정해 졌으면 말을 걸어오지도 않는다.

어쩔 수가 없다.

얼마 전 가족식사 자리에서도 그랬다.

마누라는 물론이고 설거지 문제로 딸과도 싸웠었다.

나는 뻔한 냉기가 흐를 것 같은 그 자리에  안 갈 수도 있었지만 아들놈이 전화를 해서 간 자리이다.

예상대로 마누라와 딸은 말을 하지 않았고 가끔 아들놈이 말을 걸어왔다.

대리운전 손님처럼 필요한 말만...


그렇게 그날 나는 일곱 번의 간헐적 투명인간이 되었다가

사람으로 돌아왔다. 아파트 주차장을 걸어 올라오는 세원형이 내게 손짓을 한다.

세원형은 내가 보이나 보다.


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새벽공기가 어제보다 더 차갑다. 그만하고 들어가고 싶은 맘이 들기 시작할 무렵

또 콜이 울렸다. 이번엔 또 어떤 사연이 날 힘들고 지치게 할까?

차라리 뒷좌석에 앉아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

말도 걸지 말고, 투명인간 취급 하지도 말고 그렇게 목적지까지 일시적 갑을 관계로

조용히 운행을 마쳤으면 한다.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자 덩그러니 차 한 대가 보인다.

머플러에선 어떤 골초의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 같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운행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엄지손톱 같은 얇은 달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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