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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Oct 22. 2023

식사 벌레

-쁠랑 세캉스-


이사 전에 짐을 싸야 한다.

나는 원룸으로 아내와 아이들은 분양받은 새 아파트로

이삿날, 각자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웃돈을 조금 얹어주면 내가 독립한 원룸으로 이사를 해 준다고 했단다.

익스프레스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쫓겨나는 것을 눈치채겠지. 그들만의 생각으로 날 측은하게 볼 것이다.

지금 보다 넓은 집으로 가는데 왜 굳이 살림을 나눌까?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이제 중요하지가 않다.

다만, 아들에게는 아빠가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서 잠시 나간다고 말했다.

"집에서 하면 안 돼? 아빠 서재도 있는 것 같은데..."

아들놈이 이 얘기만 안 했어도 덜 서운했을 텐데..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는 격이 됐다.

"아빠가, 대작을 위해서 이젠 집중해야 하거든..."

"네.. 네.." 사춘기는 지났지만 아직 고등학생인 아들은 그렇게 말했다.

저도 뭔가 눈치로 알았겠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집안 분위는 는 싸아하고...

왜 모르겠는가. 서로 모른 척했고 말 안 했을 뿐이다.

주말의 떠나야 하는 집은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숨바꼭질하듯 몇 년간 숨어 있던 짐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와 있었다.

처음 본 녀석들도 많고 귀한 몸도 보였으며 몇 년간 찾았던 포기했던 물건도 나왔다.

평생을 살 것처럼 아꼈던, 포장도 뜯지 않은 설레는 물건들.

노동을 시작하는 가족들은 축제분위기가 됐다.

딸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동요를 연결했다.

아들은 장터에 나온 할아버지처럼 기웃기웃 물건들을 살펴봤다.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보기엔 멀쩡한 것들도 미련 없이 버려졌다.

앞으로 쓰지 않을 것 같은 물건들도 마구 버려졌다.

나와는 상관없는 감정이다.

간섭할 상황이 아니다.

언 듯 내 물건들이 나올 땐 아내가 퉁명하게 물었다.

"이 거 쓸 거야?"

아내가 들어 보인건 하이네켄 철재 박스였다. 몇 해 전 크리스마스 때 한정판으로 나온 아이템.

"어... 그건 버리지 마. 쓸 거야." 박스를 받아 들며 내가 말했다

"내 물건은 따로 모아 둬. 내가 정리할게"

아내가 또 한숨을 섞어 말했다.

"언제? 두 번 일하게 하지 말고 지금 같이 해."

나는 알았다고 했지만 잔뜩 성난 암사자 곁에 앉을 용기가 없었다.

내 지난 과오들이 모두 범벅된 그 어떤 물건들을 정리할 기분이 아니다.

더구나 아이들도 있는데.

순간 화기애애 해질 수도 있는 반전도 기대해 봤다.

과거 잘 지냈던 추억 속으로 돌아가

"저거 기억나?"라고 물으면

"와... 이게 있었네!" 라며 합집합 속 공유로 틀어진 관계를 바로 잡을 수도 있겠다는

허망한 기대.... 는 깨졌다.

지금 아내는 물건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나와의 관계를 잘라내고 있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낙하산 줄 끊듯 하나씩 하나씩 잘라 내고 있는 것이다.

 

도깨비 시장 같은 집을 나왔다.




대학선배 '보현'형을 만나기로 했다.

크고 작은 영화제를 개최하고 예비 영화인의 작품을 발굴하고

실제로 투자자와 작가를 연결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는 나름 영화계의 유명인사다.

대학시절 복학생과 현역 신분으로 만나 작품을 같이 하며 두터운 관계를 유지했었다.

잘 통하는 면이 있었다.

영화를 보는 취향도 비슷했고, 성격도 잘 맞았다.

몇 년 전 코너에 몰려 찌그러져 가고 있던 나는 우연히 형의 SNS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취했었다.

졸업 후 형은 영화사에 들어갔고 나는 방송국 FD를 했다.

그렇게 가끔 만나 을지로에서 밤 새 술을 마셨다.

영화는 이거다. 아니다.

예술로서의 승화, 독보적 언어, 장르를 들여다보는 눈.

이따금 선배의 안 좋은 평판도 동문을 통해 들었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영화판이 원래 그렇지 하고 말았다.

나는 그 시절, 그 장소, 숱한 그 얘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을지로도 많이 변했다.

서울에 올 때는 기차를 탄다.

차로 서울로 입성하기란 전쟁통의 피난길 이기 때문이다.

서둘러 을지로 원조골뱅이 장소에 도착했다.

형은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걸까 시계를 봤지만 아직 5분도 지나지 않았다.

앉아서 기다리기로 한다. 서울이다 여기는.

잠시 후 보현형이 어떤 처음 보는 여자와 나란히 걸어온다.

안 본 사이에 형도 많이 늙었다.

염색을 한 옆머리에 은색 뿌리가 한 1센티쯤 보였다.

같이 온 여자는 프로듀서라고 소개받았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강미란입니다!"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네, 안녕하세요 조현진입니다"

서울에 사는 요즘의 젊은 영화 PD.

거친 영화계는 최신 트렌드의 센스 있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

그 프로듀서의 말투와 이미지도 그랬다.  


한참을 마신 후 마지막으로 다음 약속일과 장소를 정했다.

많은 이야기 가운데 보현형과 강 PD는 예상과 달리 건전한 사이였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솔로 가수로 데뷔하는 그룹을 나온 싱어이기 때문이다.

노래 한곡 못 하는 그냥 솔로가수.

내가 보낸 러시 (편집 중인 영화 또는 마무리가 안된...)를 봤다고

강 PD가 연락했다.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 좋은 반응은 아니다.

"감독님, 이거 잘 살리면 좋겠는데... 좀 난해 한 면은 있어서요..."

"네.. 그렇죠"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이 베이스로 각색으로 가면 어떨까요?"

강 PD는 예의 있게 거절 중이었다.

"다시라니요?"내가 알면서도 물었다.

"어... 주인공은 살리고 배경과 로케를 좀 힙하게 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뭐가 맘에 안 드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롱테이크가 너무 루즈한 면이 있어요... 프레임인도 급하고..."

"아... 네..." 나는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이 영화의 핵심이 그건데 하필 강 PD는 그걸 건드리고 있다.

"알겠습니다 보현형하고 통화하고 연락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담배를 물어 불을 붙였다.

한 호흡이 길다.

사람의 호흡은 그리 길지 못하다. 육지에 사는 한계도 있지만 타 동물과 비교해도

들숨과 날숨이 짧은 편이라고 언젠가 TV에서 본 기억이 났다.

인생이 길지 않기에 아니 어떤 이에게는 한 없이 길기에 영화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쁠랑세캉즈

아침에 눈을 떠 잠들기까지 우리는 한 눈으로 하루를 본다.

잠시 눈을 감을 때가 한 컷이 된다.

남들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은 그들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다.

영화는 그 하루의 단편이 모여 완성되어진다.

나는 그렇게 뻔하게 세상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길게 찍으며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영화 속에 영화가 있다.

그걸 잘하지 못하고 헤매다 표류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액자 속에 박제된 그 프레임이 궁금해서 떠도는 영혼을 위로하고 싶다.


또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됐다.

언제부터인지 숨쉬기가 불편해졌다.

차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연료가 부족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가다가 서지는 않을까?

아직 다 못 왔는데...

 

경고음이 또 울린다.

주유소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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