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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Oct 22. 2023

식사 벌레

-구피와 나-


서해의 낙조는 아름다웠다.

뻘 속 수많은 생명체의 소리 없는 전쟁이ㅡ 다가오는 시간.

중무장으로 잠복한 채 적군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군인처럼

서로를 경계하며 한 낮을 살아남은 생명들은 이제 또다시 야간 전투를 준비한다.

해넘이가 시작될 무렵, 옛날무사의  딱딱한 갑옷으로 무장한 갑각류도

누가 봐도 불리한 헐벗은 연체동물도 살아남기 위해 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조개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 가는지 궁금 하지만 답을 알 수 없다.

그저 조개구이집 연탄불위에서 전사하거나 칼국수 국물 속에서 발견될 뿐.


검게 변한 축축한 운동장. 그 광활함.

짠 기운을 머금은 그 살육의 현장을 어둠이 삼키고 있었다.

반쯤 남은 퇴근 하는 해를 보며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어시장을 돌아 횟집이 모여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좀 남았다. 좌판을 둘러보기로 한다.

예전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오가던 곳이다. 지금은 어깨를 부딪힐 일 없이 한가하다.

만나기로 한 제작자와 김작가는 횟집 구석에 앉아 있었다.

요즘은 보기 힘든 좌식 식당이다. 제작자로 소개받은 최사장이 앉은 채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김작가는 치마를 입었는지 덮고 있던 방석을 치우며 엉거주춤 일어나는 척을 했다.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노트북 폴더 안에 잘 들어 있던 품바 소제 시나리오를 팔 작정이다.

제작자는 재밌게 읽었다며 영화로 만들어 보자고 했었다.

김작가는 문예창작과에 출강을 나가며 제작자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김작가는 광고감독을 할 때 홍보시나리오를 쓰다 나와 알게 된 사이이지만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고 했을 때 내가 코웃음을 쳤었다.

내가 뭐라고.

어시장 좌판에서 선별한 회가 나왔다.

한상 잘 차려진 상위에 눈을 뜬 채 죽은 아까 봤던 물고기 대가리가

고통스럽게 옆으로 누워 있다. 주인장을 불러 대가리를 치워달라고 했다.

나와 눈이 마주쳤던? 물고기를 계속 보며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횟집 주방장은 아마도 자기의 칼솜씨를 뽐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감독님, 저기 주인공은 누구로....?"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 제작자는 성급함을 드러냈다.

"아... 아직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저예산 독립이라..."

나는 서둘러 대답해 줬다. 제작자라고 얼씨구나 맞장구를 치고 가볍게 대하면

오히려 책의 가치를 낮추는 역효과가 생긴다.

예전 경험이다. 뭐 그리 대단한 작품은 아니지만.

김작가는 많이 긴장한 듯 보였다.

그리고 기대감도 비췄다. 중간에 소개를 한 입장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술병이 늘어났다.

제작자는 술을 꽤나 잘 마셨다. 김작가도 본인의 주량보다 더 오버한 듯 보인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제작비 얘기가 나왔다.

급한 마음에 현재 쳐한 상황에 선금 얘기를 해 버렸다.

유쾌하게 웃던 제작자가 알겠다고 했지만 이미 딜에서 밀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감독님. 그나저나 제 조카가 있는데 한 번 만나 보실 수 있겠습니까?"

제작자가 물었다.

"조카요? 연기 잡니까?" 궁금하지는 않지만 나는 물어봐야만 했다.

"그... 뭐  연극영화과  댕기는데... 아가 이쁩니다."

"아... 네  나중에 한번 보죠 뭐..."

대답을 하고 제작자와 잔을 부딪혔다.

이렇게 또 책 팔아 캐스팅 배역 하나 주고 준비했다가 엎어지나.

엎어져도 좋으니 우선 찍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는 이어졌다.

다음 날 눈을 또 보니 유스호스텔 침대 위였다.

갈증이 심해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셨다.

어젯밤 일은 부분 부분 기억이 나지만 중요한 결론은 없던 것 같다.

언제나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피식 빠지는 풍선처럼 바람이 빠지고 있었다.




숙취가 심하다.

휴게소에 들러 아이스아메리카노 샷추가를 해서 한 모금 마신다.

어젯밤에 아내의 독촉 문자를 씹었더니

오늘은 실망을 가득 담아 또 문자를 보내왔다.

카드연체, 관리비 미납, 학원비 결제 계좌.

두통이 밀려왔다.

톡을 보니 제작자 안부톡이 와 있었다.


'감독님 다음 주에 식사 한번 하시죠. 내 조카도 보실 겸'

'네 알겠습니다'

마누라 독촉을 또 연체하게 생겼다. 다음 주까지

카드연체 문자가 뜬다. 흡연실까지 걸었다. 길게 호흡을 하니 담배가 무척 쓰다.

휴게소에서 한참을 있었다.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 있다.

TV옆 어울 리지 않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어항.

어항 속 세상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저들의 세계는 어항 속이 전부. 어한 밖 분주한 인간들을 보기는 할까?

갈등과 미움 속 세상을 알기나 할까?

그저 먹이를 주면 먹고 졸리면 자고 놀고 싶으면 또래와 어울려 놀고 헤엄치고

세상 참 편하다.

멈춤 없이 뽀글 대는 산소방울이 있어 쾌적하며. 천적이 없어 경계도 없다.

얼마 전 아파트 연못에서 딸이 주워 온 고동 두어 마리가 어항 속 분위기를

일 순간 바꿔 놓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고요했으며 한쪽으로 몰려다녔다.

개체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언제나 영원할 것 같은 그들의 물속 세상도 감정이 생겼었다.


그 어항이 탁해졌다.

아내는 톡에 어항청소를 하라고 남겨 놓았다.

줄곧 내가 해왔기에 묵갈이는 내 몫이다.

그러나 정말 하기 실은 일이다. 구피를 조심스럽게 옮겨야 하고

바닥 자갈을 박박 닦아야 하고 물을 받아서 새로운 물속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이 너무 싫다.

그러나 해야만 한다. 돈을 벌어야 가장의 역할을 다 하는 것처럼 이 일도 해야만 한다.

누가 대신 해 주지 않는다.


어항은 시커멓게 오염돼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혼탁하다. 헤엄치는 구피도 왜지 둔해 보인다.

마치 '조감독'의 미래처럼.

청소는 오래 걸렸다. 생각보다.


얼마 전 딸에게 구피를 당근마켓에 팔자고 했다.

이사 갈 때 불편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사람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없애거나

팔려고 하다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었다.


카드 연체 문자가 또 울린다.

이번 내용은 생각보다 협박이 심했다. '신용정보기관에 등록예정'

어차피 카드도 못 쓰고 있는데...

얼마 전

후배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 키오스크에 카드를 넣었었다.

'본 카드는 연체 중 이므로 사용이 제한되었습니다!'

친절하게도 메시지가 뜬다.

뒷사람이 봤을까 봐 창피했다.

그리고, 또 연이어 딸의 톡이 왔다.

자기도 당근마켓 사용이 중지 됐다고...


딸은 문자내용을 캡처해서 덧 붙였다.


'생명거래 사유로 이용정지 중인 사용자입니다!'


딸도 창피했고, 나도 창피하고,

모두가 연체 중이고 거래중지 중이다. 언제나 풀릴지...

사무실로 가는 차 안에서 마말레이드의 리플렉션 오부 마이 라이프가 흘러나왔다.


구피는 맑은 물에서 아주 잘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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