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쿠나-
상주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다.
여름이 시작된 유월의 어느 주말 네 식구는 경북 상주로 내려갔다.
주변은 이미 푸른빛으로 변해 있었고 먼 산과 계곡에도 짙푸른 녹음이 짙어졌다.
한 껏 들뜬 은비와 쭌이는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잔나비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댈 위해 마차를 준비했지 마차 타고 꿈나라로 떠나 볼까~'
설렘이 고조되는 차 안에서 나는 별로 즐겁지는 않았다.
과거 강아지를 키워 본 경험으로 아파트에서 개를 키운다는 건 어렵다.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안 그래도 기관지가 약한 애들이다. 알레르기도 감당해야 하고.
청소 그 하염없이 날리는 털.
그리고 배변문제. 이 모든 갈등의 예상들을 합의하고 다짐받고 강아지를 데리러 간다.
휴대폰 속 태어난 지 이틀 된 강아지가 누워서 우리 가족을 보고 있었다.
너무 귀여운 강아지였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아들의 처절한 조름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3년 전 그래도 밥벌이를 잘할 때 아들이 강아지 얘기를 꺼냈다.
이때만 해도 나에겐 큰 문제는 없었다.
영상 제작 의뢰도 제법 있었고. 캐릭터 사업도 더디지만 주문이 있었다.
그 영화병만 다시 도지지 않았어도.
그렇게 상주에 도착했다.
카페에서 십여분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잠시 후 있을 아기와의 만남에 한 껏 고조돼 있었다.
그런 아이 사이 아내는 그저 흐뭇한 지 미소만 짓고 있었다.
평화로운 오후 낯선 도시에서 우리는 강아지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아내 지인인 강아지 주인 내외가 포대기를 소중히 감싸고 카페로 들어왔다.
농사를 한다는 사람 답지 않게 말끔하고 환해 보였다.
그렇게 강아지 '쿠나'가 우리 식구가 됐다.
강아지를 만나러 상주로 향하던 차 안에서 작명을 했었다.
수십 가지의 후보 이름 중에 '쿠나'가 된 것은 내 의견이었다.
"우리가 조가니까.. 좋구나"
네가 와서 좋구나 널 만나서 좋구나~!
이런 이유로 '조쿠나' 즉 '쿠나'가 됐다.
쿠나는 삽살개와 보더콜리의 믹스견이다.
부모의 장점만 닮아 영리하고 깔끔했다.
우려했던 대소변도 잘 가리고 똑똑한 편이라 두 살이 지나서부터 누나의 훈련도 잘 받고
어엿한 성견이 됐다.
산책을 나갈 때면 웃었다.
그렇게 잘 웃고 잘 뛰어다녔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점점 녀석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조건 없는 충성.
주인을 지키고자 하는 충성심도 확인했었고.
집에서 잘 짓지도 않고, 예의 바른 막내로 점점 집안의 가족으로 스며들었다.
아내와의 다툼의 빈도가 많아질수록 쿠나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마냥 행복한 집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인간의 세상사는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하구나.
강아지는 그렇게 하루하루 눈치를 늘리며 집구석에 적응했다.
어느 늦은 날 저녁 아내와 나는 밖에서 각각 만취가 되어 집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전쟁이 붙었다. 지금까지 들어 본 적 없는 주인들의 높은 데시벨.
고성이 오가며 주고받은 욕들.
물건을 던지고 몸싸움을 하고 주고받는 날카로운 눈빛
처음 보는 광경에 쿠나는 귀를 얼굴에 붙이고 풍성한 꼬리를 감추고 구석으로 숨었다.
아이들은 없었지만 '쿠나'는 다 보고 들었다.
그 후 강아지는 생각하는 강아지 즉, 눈치 보는 강아지, 성격이 바뀐 개가 되었다.
인간은 싸웠다.
사랑스럽게 데려온 강아지 앞에서 개보다 못한 말을 주고받으며 싸웠다.
안 짓던 강아지가 언제부터 큰소리가 나면 짓기 시작했다.
인간은 필요에 따라 사과도 하고 또다시 잘 지내고 망각한다.
'쿠나'에게 우리는 그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반려견이기 전에 '쿠나'는 가족이니까.
그렇게 싸우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 이기에
그날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참았어야 했다.
지금도 내가 집에 들어오면 반갑게 반기는 유일한 가족이기에...
'쿠나'는 아주 좋은 내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