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 율 Oct 22. 2023

식사 벌레

-무릎이 나갔다-

 

왜가리가 높은 소리를 내며 제천 위를 날았다.

도심 속에서 가까이 보게 되는 흔한 광경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 사이를 흐르는 인공천은 금강의 맑은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

비교적 깨끗하고 마르지 않는다.

오리 떼는 벌써 한 자리들씩 차지하고 먹이를 찾아 먹는다.

물을 따라 흘러 들어온 피라미를 잡아먹느라 정신이 없다.

산책 나온 사람들의 눈요깃감이라도 상관없는 듯 보였다.

어디선가 백조 한 마리가 날아든다.

발레리나처럼 가볍게.

조심스러운 하얀 왜가리도 가끔 제천 위에 날아들었다.

우아한 날갯짓으로 허공을 날아 맑은 물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오리 가족과는 그래도 잘 지내는 편인가 보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기 좋아한다.

내가 사는 곳이 이렇게 맑다고.. 이런 자부심이 그들에게 있다.

나는 이런 아파트에 산다.


아들놈의 무릎이 빠져서 집에 들어왔다.

습관성 슬개구 탈구.

어렸을 적부터 운동을 많이 한 탓도 있지만 유전적으로 뚱뚱한 체형도

그 원인이다.

미루던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아이는 엄살이 없는 편인데 얼굴을 찡그리며 아파했다.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는 게 부모로서 걱정이 됐지만 해야 할 수술이었다.

어릴 때 몸이 약해서 홍삼진액을 사서 먹였다.

그 후 식욕이 좋아져서 잘 먹기 시작했다.

자식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과 마른 논바닥에 물들어 가는 게 보기 제일 보기 좋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아들은 걱정반 기대반으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예상 시간이 한 시간인데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아직 병원 전광판은 '수술 중'이다.

아내는 벌써부터 안절부절못하는 눈치고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 밖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두 번째 담배를 피우고 수술실로 왔을 때 드디어 '회복 중'이 떴다.

아` 부모 마음이 이런 거구나.

 의사말은 근육량이 많아 좀 더 걸렸다고.. 아무튼 수술이 잘 돼서 다행이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먼저 병원을 나왔다.

간호는 아내가 하기로 했다.

아내는 아들이 뚱뚱해진 게 본인 탓이라 생각 하나보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복잡하게 얽힌 교육청과의 일을 마무리하고 사우나에 들렀다.

그동안 밤샘작업에 아들 입원준비에 피곤이 겹쳤다.

그 보다 좀 쉬고 싶었다.

아들은 일주일 가량 병원에 입원해야 한단다.

녀석은 아주 신났다. 하루종일 누워서 게임하고 병원에서 주는 밥을 먹고 쉰다.

아들은 딸에 비해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운동을 하고 싶어 했지만 그것도 별로 재능이 없어 보였다.

네 인생은 네 것이다!

이 한마디로 아들에 관한 스트레스는 접기로 했다.


아내는 오늘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

교대를 해주기로 했는데 언제 올지 물어보지 않는다.

아내의 냉정함은 얼음 같이 차고 칼날처럼 냉정하다.

예전에 안 사실이지만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위험하듯이

밝고 유쾌한 사람이 돌아서면 그만큼 더 냉정한 법이다.


사우나를 하고 병원에 갔다.

아내는 없었다.

아들은 약 기운에 취했는지 자고 있었다.

병실 밖 상현달이 애처롭게 떠올라 있었다.


아들놈이 회복하면 그 좋은 제천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녀석의 무릎이 나 갈동 안 우리 부자는 서로 말이 없었다.

너무 부자 같지 않게 남처럼 지내왔다.

그게 내 탓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쓰려 왔다.

상현달은 아까보다 조금 색깔이 밝아져 있었다.


술이 한잔 생각났지만 오늘은 그냥 참기로 했다.

아들이 아픈데...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았다.

이전 08화 식사 벌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