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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Oct 22. 2023

식사 벌레

-마감-


이삿날이 밝았다.

새벽부터 사다리차가 19층까지 다리를 뻗혔다.

아이들은 서둘러 이사할 집으로 아내와 갔다.

복잡한 집안으로 인부와 바구니들이 들어왔다.

이사는 언제나 신경 쓰이고 성가시다.

온 신경을 나가는 짐들과 비워져 가는 공간에 집중해야 한다.

일은 익스프레스 직원들이 하지만 물어 오는 질문과 결정은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버려야 했다.

10년 된 소파도 삐걱거리는 탁자도 유행 지난 가전제품도

모두 폐기해야 한다.

젤 오래된 그것들의 주인이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고마웠다. 미안하다.

이사는 공간의 이동이지만 묵은 추억도 함께 빠져나가기에  감정을 건드린다.

베테랑 인부들의 손놀림에 공간은 빠르게 비워졌다.


텅 빈 공간을 돌아본다.

곳곳에 사연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이곳에서 딸아이는 서울 명문대에 합격했고

아내는 승진을 했으며 아들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나온 나는 이 집에서 백수 신분이 되었다.

싸움도 많이 했고 아내와 사랑도 나눴다.

처가 식구들이 자주 찾아와 파티도 하고 술도 마셨으며 명절을 함께 보냈다.

모든 추억과 상처가 스쳐 지나갔다.


새집에는 들리지 않기로 했다.

이사한 집의 사령관은 따로 있었다.

이제 나는 전역을 하는 노병처럼 퇴장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얼마 전 알게 된 내 몸의 이상 징후를 따라 병원을 다녀야 한다.

미리 얻어 놓은 원룸에는 이미 짐들이 도착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나중에 정리하기로 했다.

또다시 가슴에 통증이 왔다.

아내는 항상 나에게 말이 없다고 혼자 끙끙 앓는다고 사이좋은 시절에도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과묵한 것보다는 할 말이 없었건 거였다.

 어린 시절 발랄하고 해맑던 아이는 언제부터 조용한 아이가 되었다.

그 겨울 그러니까 어떤 미친 선생의 말 한마디에 큰 상처를 받았고 그 이후로

내성적으로 변해 갔었다.

아내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지만 그 특유의 밝은 미소와 하이톤의 기분 좋은 울림이

나는 좋았었다.

그렇게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내가 차츰 어린 적 숨은 밝은 아이를 소환하여

내 것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왔을 때

아내와 헤어지고 또다시 그때의 나가 되었고 웅어리진 가슴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직업상 많은 밤을 새우고, 줄담배를 했다.

술도 함께 내 몸을 망가뜨렸다.

10년 전 아내의 권유로 금연을 했었지만 또다시 흡연자가 되기까지는 6개월도

안 걸렸다.


담당의는 몇 가지 검사를 더 해 보자고 했다.

체중이 언제부터 줄였냐고 물어봤다.

한 1년 전쯤부터 30년간 유지해 오던 체중이 줄기 시작했다.


 


원룸에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식사벌레' 사체들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벗어나려 움직 일 수록 이상하게 몸이 가벼워졌다.

똑같이 생긴 식사벌레 사이에서 나는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부화하여 성충이 되면 갈색거저리가 된다.

내 어깨가 갑자기 꿈틀거리고 뭔가 빠르게 삐져나왔다.

투명통속에 같이 기생하던 식사벌레와는 전혀 다른 성충이 되어갔다 화려하고 크 날개도

돋아 났다.

분명 식사벌레들과 섞여서 왔던 거다.

통을 빠져나온 나는 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 위를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화려하고 우아하게...


식사벌레들이 그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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