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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Oct 22. 2023

식사 벌레

-오리가 날아갔다-


지프라기 작가와 꽤 긴 시간을 통화했다.

휴대폰이 뜨거워져서 이제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그가 먼저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 화장실이 눈에 보였나 보다.

그는 덩치에 안 맞게 변비환자다. 본인이 직업병이라 했지만 내가 보기엔

대식가라 그렇다. 술도, 밥도 내 두 배를 먹는다 언제나.

하이에나처럼 낯선 곳에 가도 화장실 냄새를 잘 맡는다.

개방형 화장실과 잠겨있는 화장실을 건물 색만 봐도 느낌이 온단다.

실수를 안 하기로 마음먹으면 보인단다.

"어제 또 과식했나 보군!"

내가 버디를 하자고 했을 때 지프라기는 남남인지 남녀인지 여여인지 물어봤다.

그리고는 "그 외... 특수해요?"

이렇게 묻는 지프라기의 저의를 알고 있다.

복잡하게 들어가면 취재를 해야 해야 한다.

세간에 떠도는 자료로 비빌 수 있는 것이 편하지만 누군가를 만나면 디테일 해진다는 걸

그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밖으로 나오기 전엔 모두 비밀이다.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서 가끔 까발려지는 이야기는 자극적이다 못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마치 똥 실수를 한 사람을 놀리듯...

  파렴치한 인간을 경멸의 눈으로 쏘아보게 되는

기획에 실소를 감추지 못하겠다.

그것이 모두 리얼리라도 그렇다 하더라도.

약간 보이는 것을 보이게끔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전혀 안 보이는 것을 탈탈 터는 것

그게 필요하다. 마치 진실을 알게 된 여주인공이 무언가를 찾다 안 돼서

가방을 거꾸로 탈탈 털어 버리는 클리셰처럼.

그렇게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래서 원하던 것을 찾는 것처럼

가끔 가방을 뒤집어도 찾고자 하는 물건이 없을 때가 있다.

처음부터 어긋난 것. 아니면 오해,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린 것.

사랑이나 감정이나 찾으려 하면 없다.



버디무비에 관한 얘기를 할 때면 지프라기는 늘 '델마와 루이스'를 얘기한다.

혹은, '레인맨' 모두 오래된 명작이지만 지금은 그저 피카소나 모네의 그림처럼 박제된 채

비슷한 류의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자료화면으로 가끔씩 소개되는...

최근에는 '그린북'이란 영화도 있긴 하지만.

시나브로 잊힐 때쯤 위안의 마음을 장전하고 매력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영화는 세상에 나와준다. 장르가 떨어질 때쯤.


파주까지는 먼 거리다. 차로 2시간. 연료가 없다.

미루기로 한다. 뭔가 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급한 마음에 달려간 들

정만 맞고 씩씩대다 소주만 먹고 돌아오기 일쑤다. 지푸라기의 망치질은 언제나 정교하고

타격감이 좋아서 다비드상을 들고 갔다가 보도블록이 되어 돌아온다.

납작하게 평범하게 흔하게...

두들겨 맞기 싫어서 몇 번을 혼자 도전했다.

너 없으면 못 쓸까 봐. 어차피 인생은 독고다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써보자. 그렇게 시작만 하다 얼씬도 못 가서 폴더에 처박힌 초고만 10편이 넘는다.

모두 죽 아니면 앉히지도 못한 생쌀이 된 채로.

언제쯤 밥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반찬 없이도 식욕 당기는 구수한 갓 지은 밥냄새.




올 초에 계약한 체고에서 연락이 왔다.

소년체전 일정을 보낸다고. 이번엔 울산이다.

장비를 챙겨 울산에 내려가야 한다. 울산까지는 거의 3시간을 가야 한다.

머릿속은 온통 영화생각뿐인데 소년들의 인생을 찍으러 가야 한다.

퇴사 전 알고 지낸 교육청 관계자의 요청으로 홍보영상 제작을 의뢰받았다.

캠페인 영상을 잘 만들어준 인연으로 맡은 것이다.

일단, 무조건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잘 된 일이었다.

뻔 한 홍보시나리오에 뻔한 순서 그리고 뻔한 컨펌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않는가

무언가 목표를 향해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운동하는 학생선수들의 영혼을

담아내고자 나름 많이 생각하고 찍기로 했다.

누군가는 이 영상을 보고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말이다.


시간이 남아 호수공원 앞 편의점에 들러 담배와 얼음커피를 샀다.

커다란 테마호수 구조물과 계단식 광장 그리고 원형의 무대는 을씨년스럽게 비어있다.

주말이나 되어야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린다.

그것도 대게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가족과 처음 온 듯한 시선이 둘러보는 뻔 한 표정의 이방인.

그리고 작은 공연들이 있을 때 운집 했다 사라지는 딱히 갈 때 없는 사람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00시는 아직 목표 유입인구에 한참 모자란 도시다.

어느 인심 잃은 구두쇠영감이 자식들의 권유로 칠순 생일에 손님을 초대했지만

깔아놓은 좌석에 빈자리가 더 많은 그래서 쓸쓸하고 민망한 그런 망친 잔치.


호수공원은 오늘도 조용하다. 호수경계 갈대숲 안쪽으로

뭘 만들라고 파 놨는지 모르는 넓은 웅덩이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 있었다.

유난히 강수량이 많았던 장맛비에 웅덩이는 연못이 되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오리 서너 쌍이 뭔가를 찾고 물질을 하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소금쟁이? 물고기? 아무것도 없던 곳에 설마 누군가의 밥이 생겨났다.

오리가 괜히 왔을까?.

오리는 본능적으로 왔다.

비는 내려야 했지만 너무 많이 내렸다.

누군가의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웅덩이

공사는 일시중단 됐고 그 의도를 모르는 비가 왔고 물이 고였다.

맑은 물이

우연히...

그리고 오리가 날아들었다.

비가 내리지 않고, 웅덩이의 목적이 연못이 아니었다면 그 웅덩이는 다시 마른땅이 될 것이다.




며칠 후 그 편의점에 다시 들렀다.

담배 한 갑과 얼음 커피를 샀다.

편의점 맞은편 웅덩이가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꼭 그런 심리는 아니지만 범인이 현장을 다시 찾는 심정으로...

그곳에서 행복한 오리 떼를 봤기에.

장마가 끝나고 며칠간 35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계속 됐다.

예상대로 웅덩이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수위가 낮아졌다.

높아진 잡초 사이로 뭔가 둔중한 움직임이 보였다.

한가롭게 행복하게 웅덩이를 유영하던 오리부부는 아니었다.

'아직 오리가 있었네'

물도 낮은데 뭐 하는 걸까?

아직 뭔가가 있는 걸까? 우연히 생긴 먹이창고에 대한 미련일까?

오리 한 마리가 보였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나는 늘 담배 한 개비의 시간만 머물다 가곤 했다.

담뱃불이 어느새 필터의 끝부분까지 왔다.

바로 그때, 푸드덕 거리는 날개소리와 요란한 물 퍼지는 소리가 났다.

내게 인사라도 하 듯 외마디 외침과 함께.


오리가 날아갔다.


'누군가의 밥'은 웅덩이에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아마 오리는 다시 이 웅덩이를 찾지 않을 것이다.


현장을 돌아본 범인도 차에 시동을 걸고 그 웅덩이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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