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 율 Aug 10. 2021

보홀의 개

6월의 크리스마스

-2019년 12월-

어제저녁에 와인을 좀 마셨다.

새벽 비행기라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일부러 와인을 마시고 일부러 잠을 설쳤다.

이번 비행에는 기필코 하늘에서 잠이 들것이다.

혼자만 아는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지만 매번 실패했다.

약한 수면제도 먹어보고 위스키도 먹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의 근본적 걱정은 비행기가 떨어질까 봐이다.


2시간여를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이 보이니 공황장애의 전조증상이 시작된다.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짐을 줄이려 입고 있던 외투를 벗고 트렁크를 끌고

대합실로 들어선다.

아이들도 모두 살갗을 비비며 따뜻한 실내로 종종걸음 친다.


필리핀은 딸이 원한 여행지였다.

추운 곳에서 더운 곳으로 계절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지구는 둥글고 넓다.

몇 시간만 날면 계절이 바뀌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한겨울이다. 기온도 영하 8도.

몸은 겨울에 세팅되어 있는데 여름으로 향한다.

다소 여유로운 시각. 순조로운 출국과정이 끝나고 곧 비행이 시작된다.

저가항공기가 활주로에 섰다.

마치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스타트를 기다린다. 이윽고 굉음. 그 육중한 기체를 띄우기 위한  엄청난 속도.

활주로를 덜거덕 거리던 비행기는 이내 허공에 떴는지 그 어떤 류의 땅의 저항이란 없어졌다. 대지를 박차고 이륙했다.

이젠, 내 운명이 비행기와 함께 하늘의 뜻이 되는 셈이다.

난, 이제 뭣도 할 수 없다.

그저 기장님의 컨디션이 이상 없거나 기체 점검에 하자가 없거나. 철저히? 준비한 수면이 오류 없이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더 이상 하늘 위, 비행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내가 잠이 들었을까?

공황장애를 극복했을까?

그건 뭐...


보홀이다.

필리핀의 수천 개의 섬 중 하나

덥고 좋다.

갑자기 여름이다.

롭복강 크루즈로 여행이 시작됐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다.

가볼 곳도 많고 체험도 하겠지.

고래도 보고 반딧불 투어도 하겠지...

신난 아이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와이프.

필리핀은 우기가 막 끝난 시점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6월 말 날씨.

한창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시작된다고 한다.

6월의 크리스마스.

보홀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시작되나 보다.


그 보홀의 개를 만나기까지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어디를 가든 개는 늘 그곳에 살고 있었다.

보홀의 개도... 그곳에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박수칠 때 떠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