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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Apr 03. 2021

새벽 메이트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하기


나에게는 몇 가지 강박증이 있다. 첫 번째로 나는 머리카락이 주변에 널려 있는 꼴을 못 본다. 쉴 새 없이 미니 청소기를 돌리며 머리카락을 치운다. 청소기를 돌리기 애매한 새벽에는 찍찍이를 써서라도 머리카락을 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두 번째로 가능한 양말을 신은 채 이불을 밟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가 양발을 신고 이불 위에 올라가면 먼지가 묻는다고 싫어하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습관이 몸에 배었고 자취를 하면서도 지키게 됐다. 너무 피곤할 때에도 발은 이불 밖으로 내놓은 채 누워있는다.


세 번째로는 잠에 대한 강박증이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상당히 불안해한다. 나는 불면증을 감기처럼 겪는 편인데 한번 잠을 못 자면 새벽까지 잠을 못 자거나 밤을 새우고는 한다. 특히 밤을 새운 다음날 일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최악이다. 그 하루를 어떻게든 버티려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서 6시에는 오히려 덤덤하다. 피크는 9시부터다.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빠지고 구름 위를 걷는 듯 몽롱하다. 매번 불면증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 감당할지를 모르겠다. 그저 온 힘을 다해 버티는 수밖에-



다행히 우리 가족 중에 이런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있다. 아빠는 나 못지않게 잠을 못 주무신다. 그래서 내가 본가에 있을 때 새벽마다 부녀상봉이 이루어졌다.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뒤척일 때 새벽에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 켜는 소리가 들리면 '아빠구나-' 했다. 반대로 내가 거실에서 멍하니 앉아있으면 안방 문이 열리면서 아빠는 왜 안 자냐고 물으셨다. 어쩌다 피곤해서 일찍 잠을 자게 되면 그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아빠는 농담 삼아 말하셨다. "어제 딸 안 나와서 아빠 새벽에 심심했어" 그런 내가 자취를 하게 되자 아빠는 새벽 친구를 잃었다고 섭섭해하셨다.


새벽 친구를 잃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취방에서는 새벽에 상봉할 친구가 없었다. 적적한 새벽을 함께 맞을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만의 새벽 메이트를 만들었다. (한 가지 명실 할 점은 자취방에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새벽 메이트가 사람은 아니다.)


제일 먼저 산 것은 수면등이었다. 처음 자취방에서 잠을 잘 때 무서워서 당황스러웠다. 본가에서도 방을 혼자 썼고 캐나다에서 살 때 하우스메이트가 여행을 가면 집에서 혼자 잤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취방에서 혼자 자는 건 차원이 달랐다. 본가에서 혼자 방을 써도 다른 방에 부모님과 동생이 있었다. 캐나다에서도 하우스 메이트가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자도 무섭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자취방에서 잠을 잘 때 마치 관속에 있는 기분도 들었다. 음침한 분위기를 깨고자 수면등을 켜놓기 시작했고 은은한 수면등을 켜놓으면 안심이 됐다.


그리고 음악을 틀었다. 초반에는 잔뜩 예민해져서 조그마한 소리에도 쉽게 잠이 깨곤 했다. 별것 아닌 화장실 물소리, 바람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서 실체(?)를 확인해보고는 했다. 긴장하고 있는 몸을 편안하게 풀어주기 위해 음악을 찾았다. 유튜브에는 다양한 음악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내게 제일 맞는 음악은 벌레소리와 함께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였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리와 벌레 소리는 시골에서  잠을 자는 느낌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잠에 빠졌다.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처럼 명상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하는 연예인들이 많았다. 생각보다 나 못지않게 많은 자취생들이 혼자 잘 때 적막한 것을 싫어하는구나 싶었다.    

 

세 번째로 본가에서 이북 리더기를 가져왔다. 사실 몇 년 전에 사놓고 거의 쓰지 않았다. 이번에 자취를 하며 가져왔다. 잠을 청하는데 텍스트 만한 것이 없다. 이북리더기로 책을 읽으면 눈이 피로하지 않아서 새벽에 읽기 불편하지 않다. 글을 읽고 있으면 어느덧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명상을 했다. "마보(마음 보기)"라는 앱을 자주 이용했다. 잠을 청하기 위해 구독한 명상 앱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자주 이용하게 됐다. 회사에서 실수를 해서 주눅 들어있을 때, 무례한 사람을 만나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날을 때, 정신없이 바빠서 마음이 붕 떠있을 때 10분 남칫의 짧은 명상을 하면 신기하게 차분해졌다.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서 새벽 메이트를 만들고 나니깐 든든했다. 낯설었던 자취방이 마치 아기 요람처럼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나의 새벽 메이트들과 함께라면 다가올 새벽이 적적하지 않고 불면증이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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