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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Apr 11. 2021

[번외] 그럼에도 5평으로-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하기


1화 [48평에서 5평짜리 집으로 이사한 이유]가 카카오 메인에 걸린 날, 나는 아는 동생에게 캡처 화면을 보내주며 자랑을 했었다. 글 재밌다, 공감된다 이 정도의 가벼운 평가를 예상했었는데 동생은 예상외의 평가를 했다.  


"언니, 나 언니 글 읽고 나도 독립하고 싶어 졌어"



진심 어린 평가에 고마웠다. 내 글이 그 정도의 영향이 있었나 싶어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당황스러웠다. 마냥 독립생활을 추천하려고 쓴 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또래분들에게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하려면 무조건 독립하셔야 합니다!' 이런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억울함 "이었다. 약 2년 전, 야심 차게 1억이라는 전세 대출을 받고 그동안 모아 온 돈을 탈탈 털어서 독립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서울 전세 대란으로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은 겨우 "5평"이었다. 이렇게 말하며 누군가는 '네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하지만 1억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만큼 사회는 청년들에게 편안한 집을 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 힘으로 살 수 있는 집이 "5평"이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그래서 내 5평 생활을 글이라도 남기자는 취지에서 이 글을 쓰게 됐다.


또한 독립생활의 장단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독립을 고민할 즈음에 그 누구도 내게 독립생활을 구체적으로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 그때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 지냈었다. 독립하고 싶지만 귀찮거나 돈이 많이 들어서 꺼린다는 이유에서였다. 독립한 친구들이 한 두 명 있었지만 단순하게 대답했다. "그냥, 돈 많이 들어" 나는 그 정도의 단점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 꿈에 부푼 채 호기롭게 독립했다.


실상 독립한 삶은 녹록지 않았다. 꿈만 가지고 독립을 하기에는 현실적인 단점들이 있었다. 자유를 얻는 대신에 따라오는 수많은 책임들과 여성 1인 가구의 불편함이 있었다. 또한 아파트와 원룸 주택의 삶은 확연히 달랐다. 원룸 주택은 아파트보다 시설적으로 불편하고 원룸 주택만의 고유한 문화가 존재했다. 그래서 원룸 주택의 특징들과 양면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원룸 주택으로 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내게 "하은 씨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결정할 건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5평에서 살 거예요"


비록 내가 지금 당장 독립해서 갈 수 있는 집은 5평짜리 집이고, 5평 집에서는 물건 놓을 공간도 부족하고, 쉴 새 없이 가사노동을 하며, 때로는 혼자 사는 게 무섭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5평에서 만큼은 부모님 보호 아래서만 생활이 가능한 반쪽짜리 성인이 아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동시에 "5평"은 내게 로망이기도 하다. 마치 유명한 배우들이 무명시절 반지하에서 버틴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5평은 내 자랑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내 힘으로 만들어낸 공간이다. 육체적으로 편안한 삶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편안하다. 5평은 내 삶에 있어 성장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내 작은 바람은 이 글을 통해 독립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정보를 드리고, 이미 독립한 분들에게는 공감되도록 쓰고 싶었다. 또한 독립을 한 자녀를 둔 부모님에게는 독립한 자녀의 심정을 알려 드리고 싶었다. 모든 자녀가 나와 똑같은 이유는 아닐지라도 마음 한편으로 정신적 독립에 대한 갈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5평에서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몇 달 동안 5평에서의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넓은 평수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이번에 이사를 갈 때 5평으로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5평은 내게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살면서 사춘기 시절을 반드시 겪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곧 헤어질 나의 5평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다.  



약 2년 전, 두 개의 창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너를 처음 봤을 때 단번에 내 집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집이 돼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알 수 있었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어. 이제 다시 못 볼 테지만 잊지 못할 거야. 너는 내 삶에서 큰 성취감을 안겨준 가장 의미 있는 공간이었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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