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은 Apr 05. 2021

노크하지 않는 집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하기


나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녀의 소설은 익숙한 일상의 소재로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중에서도 읽으면서 감탄했던 소설은 대산 대학 문학 수상작인  단편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이다. [노크하지 않는 집]은 한 층의 복도를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간의 소통이 없는 서울 고시원 생활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하지만 다소 과한 묘사에 '소설이니깐 과장돼서 표현한 거겠지, 정말 이웃끼리 서로 대화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서울에 살아보니..



실제로 서로의 집을 노크하지 않는다...



원룸 주택의 이웃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동물들이 있다. 첫 번째로 "미어캣"이다. 미어캣처럼 외부의 동태를 살핀다. 내가 계단에서 올라올 때 분명 옆집 현관에서 신발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잠잠하다. 내가 집에 들어가면 그제야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반대로 나 역시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에 나가려다가도 복도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리면 집 안에서 계단을 내려갈 때까지 기다린다. 이렇듯 "서로를 의식하고 있지만 절대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 <출처: (브런치) 가까스로 적어보는 문학 [서울이라는 감옥] - 박민진>


두 번째로 "고양이"이다. 사람들에게 쿨하다. 우리는 우연히 복도에서 정면으로 눈이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다. 분명 우리 층에 사는 사람인 것을 알지만 못 본 척 지나간다. '인사 안 하기'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다. 나는 1년 넘게 살았지만 옆집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거의 모른다. 그저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은 가끔 몰래 개를 데려온다는 것, 정기적인 시간에 집을 나서고 돌아온다는 것, 가끔 밤에 세탁기를 돌린다는 것 정도이다. 그 모든 정보는 그 집에서 나는 소리들을 통해 알아냈다.   


하지만 나는 본가 아파트에서 이웃들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이웃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아파트 헬스장에서 아는 이웃을 만나면 근황을 묻는다. 아파트 이웃들도 마찬가지다. 새로 이사 온 이웃들은 먼저 인사를 하고 경비아저씨들은 나를 보면 항상 반갑게 인사를 해주신다. 같은 주거공간인데 달라지는 나와 이웃들의 태도가 신기했다. 하지만 이내 곧 아파트와 원룸 주택의 차이점을 떠올리면 주거 문화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원룸 주택의 3가지의 특성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첫 번째 특징은 도시의 익명성이다. 1990년대 도시화가 정착된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부모님과 도시에 살기 시작했다.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 알고 있는 농촌과 달리 도시는 각 구성원의 익명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는 이런 도시의 익명성이 100% 익숙하지 않다. 기성세대는 반농 반도 세대이기 때문이다. 즉, 도시의 자유를 그리워 하지만 동시에 농촌의 끈끈함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 내에 이웃을 만들며 공동체를 이룬다. 대표적인 증거로 반상회가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공동의 안건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주기적 모인다. 반상회를 통해 새로운 소식을 전달하고 주민 간 친목을 도모한다. 즉, 아파트는 익명성이 반만 보장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우리 자식 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도시에서 살기 시작했다. 도시의 익명성최적화돼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아파트의 애매한 끈끈함이 불편하다. 이를테면 퇴사하고 집에서 놀고 있을 때 낮시간에 앞집 아줌마를 만나면 난감하고 새벽에 술 마시고 들어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윗집 아저씨를 만나면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완벽한 익명성을 꿈꾼다. 원룸 주택은 그런 욕구가 반영된 최상의 공간이다. (원룸 주택에는 반상회 자체가 없다)   


두 번째 특징은 두려움이다. 1인 가구로 이루어진 원룸 주택에서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은 커진다. 원룸 주택은 특성상 아파트와 같은 경비원이 거의 없다. 경비원이 있어도 혼자 살기 때문에 보안에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만약 돌변하게 되면 속수무책이다. 꼭 범죄의 위험성이 아니라 할지라도 낯 모르는 사람끼리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말을 걸지 말지, 인사를 할지 말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출처: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그래서 이웃을 마주쳐도 차라리 쿨하게 지나치는 게 마음 편하다.


세 번째 특성은 반 투명한 신분 보장이다. 고급 아파트 내 주민들은 어느 정도 신분이 보장되어 있다. 실제로 본가 아파트 주민들은 중산층 이상의 소득을 가진 분들이 많다. 그들의 직업군은 주로 개인 사업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많으며 이외에도 공무원, 의사, 교수 등등이 있다. 그의 자식들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거나 고액 연봉이 보장된 회사에 다닌다. 그러므로 아파트 내 커뮤니티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쌓으면 경제적 혜택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원룸 주택 이웃들은 아파트만큼의 신분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물론, 서울 원룸 주택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하지만 아파트에 비하면 원룸 주택은 입주에 있어서 진입 장벽이 낮다. 주로 대학생들 혹은 사회 초년생들이 많기 때문에 경제 소득이 평균에 비해 낮거나 비슷하다. 간혹 경제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있지만 혼자 살기 때문에 정보를 공유할 여유가 없다. 원룸 주택 이웃보다는 신원이 보장된 회사 동료나 대학교 동기들과 어울리는 게 안심된다.    


이러한 이유로 원룸 주택 이웃들은 서로의 집에 노크하지 않는다.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고 누구인지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참조: 한국민족문화 백과 <반상회>, (유튜브)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다독다독, (책)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이전 07화 두 집 살이는 어려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