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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Apr 04. 2021

두 집 살이는 어려워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하기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하기

"네 방에 아무도 없으니깐 마음이 텅 빈 것 같아.."


엄마는 가끔 영상 통화를 할 때면 이런 얘기를 하셨다. 나는 다 큰 딸내미가 뭐가 보고 싶냐고 툴툴 댔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엄마이기에 다른 식구들이 있어도 그 마음이 온전히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래서 나는 매주 언제쯤 오냐는 엄마의 연락에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 번씩 본가로 내려갔다.


회사에서 본가까지는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퇴근 후 만원 버스를 타고 두 번 지하철 환승을 해서 최종 도착역에 내리면 몸이 녹초가 된다. 지하철 역에서 본가까지 10분이 채 안 걸리지만 5일 동안 직장에서 쌓인 피로 때문에 다리가 천근 만근이다. 그런 내 피로를 풀어주는 건 반겨주는 엄마의 목소리다.


"딸~~ 왔어~"


현관문을 열면 엄마는 강아지처럼 달려 나와 나를 반긴다. 키 150 센티가 안 되는 엄마가 달려와 내 품에 폭 안기면 묵어있던 피로가 조금 가시는 듯하다.  


"밥은 먹었어? 안 먹었지?"  


엄마는 내가 집에 오면 꼭 식사 여부를 확인한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답은 "안 먹었어"이다. 엄마는 내가 밥을 먹었다고 하면 무엇을 먹었는지, 배가 정말 부른 지 여러 질문을 쏟아낸다. 때문에 최대한 식사 약속을 잡지 않고 들어간다. 엄마는 부인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가 해준 밥을 식구들에게 먹이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 본인에게 안심되고 엄마 삶의 낙중 하나인 것 같았다.

   

내가 밥을 먹기 위해 식탁 앞에 앉으면 꼭 옆에 앉아한 마디씩 거든다. "이거 먹어봐, 저거 먹어봐, 왜 안 먹어?, 이거 맛있는데 한 번 먹어보지." 엄마는 우리 집 비 공식적 식사 감시관이다. 본가에 살 때는 이것 때문에 정말 많이 싸웠다. '아니 나는 밥상에 조차 자유롭게 먹을 수 없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엄마의 지나친 관심이 갑갑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덤덤하다. 오일 동안의 고독한 식사로 인해 엄마의 간섭도 애정으로 느껴진다.

 



저녁을 먹고 내 방에 들어가면 다소 낯설다. 짐이 많이 빠져서 방은 홀쭉해져 있다. 방에는 최소한의 옷, 화장품, 책, 기타 물건들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내려와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구비해두었다. 최소한의 아이템을 세팅하기까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초반에는 마땅한 잠옷이 없어서 엄마 옷을 입거나 화장품이 없어서 엄마의 화장품을 빌리기도 했다. 또는 필요한 책이 본가에 있어서 가지러 가기도 하고 본가에 내려온 날 지금 써야 하는 노트북이 자취방에 있어서 자취방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각각의 집에 균형 있는 살림을 차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런 번거로운 일들을 방지하고자 우선 내가 자주 쓰는 물건들은 두 개씩 구매했다. 특히 로션, 스킨케어, 수분크림 같이 나만 쓰는 물건들은 자취방에 하나, 본가에 하나씩 주문했다. 그래서 내 온라인 쇼핑몰 주소록에는 본가의 주소, 자취방의 주소가 각각 등록되어 있다. 또는 물건들은 반반 나누었다. 옛날에 구매한 오래된 노트북은 본가에 새 노트북은 자취방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옷들은 자취방에 보관했고 자주 안 입는 옷들은 본가에 보관했다. 이미 다 읽은 책은 본가에 있고 읽을 책들은 자취방에 있다. 즉, 내가 지금 활용하는 물건들은 자취방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은 본가에 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본가의 내 방은 창고처럼 쓰이고 있다. 짐을 다 가져가고 싶었지만 코딱지만 한 내 자취방에는 모든 물건을 보관할 수 없다. 씁쓸한 5평의 비애이다.


하지만 아직 두 집 살이에서 내려놓지 못한 문제가 있다. 바로 엄마가 싸주는 음식이다. 엄마는 항상 자취방으로 올라갈 때면 음식을 싸주려고 한다. 이때 실랑이가 벌어진다. 음식을 하나라도 더 싸주려는 엄마와 하나라도 안 받겠다는 나 사이에서 신경전이 벌어진다. "엄마 나 김치 있어 안 싸줘도 돼" "김치는 오래 둬도 되니깐 가져가" "아냐 무거워서 가져가기 싫다니깐" "그럼 데려다줄게 가져가" 이런 실랑이는 종종 벌어진다.


물론 엄마가 싸주는 음식들은 맛있다. 하지만 자취방에서 나는 잘 먹지 않는 편이었고 나중에 다 못 먹어서 버리게 되면 처리하는 게 곤란했다. 또 짐이 많아지면 올라갈 때 무거워서 싫었다. 양손 가득 음식을 들고 지하철을 탈때마다 다른 승객들 눈치가 보였다. 그렇다고 매번 부모님한테 자취방까지 데려다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실랑이는 예전보다 조금 누그러들었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




그런 날 보며 엄마는 두 집 살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놀린다. 본가에 돌아오고 싶지 않냐고 슬쩍 떠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자취하니깐 엄마랑 애틋해서 더 좋아."


나는 성인이 된 자식은 타오르는 장작과 같다고 생각한다. 작은 불씨였던 어린 자식들은 부모가 주는 땔감들로 조금씩 불을 지핀다. 그러다 성인이 되면 자신의 가치관이 형성되면서 거침없이 불을 지핀다. 하지만 한국의 부모는 자식들은 여전히 작은 불씨라고 생각한다. 땔감을 주려고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자 성인이 된 자식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하며 불을 활활 태운다. 결국 부모는 가까이 다가가려다 데이고 만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너무 가까이 있지도 멀리 있지도 않아야 한다. 법정스님 역시 인간관계에 있어 삶의 여백을 강조한다.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합니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포만 상태는 곧 죽음입니다. 그리움이 고인 다음에 친구를 만나야 우정이 더욱 의미 있어집니다. 인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 (일기일회 122 page).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움이 고인 관계는 더욱 단단해진다. 작은 허물도 덮어줄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이따금 잊고 있었던 가족 간의 사랑도 차오른다.  


엄마가 싸준 반찬들을 지게꾼처럼 양손 가득 들고 나서는 길, 다음 주 엄마가 보낼 문자 메시지 내용이 떠오른다. "그래서 다음 주는 언제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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