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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Mar 30. 2021

나만의 응급실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하기


내게 "혼자 살면서 제일 서러울 때가 언제예요? "라고 물어본다면 1초의 망설임 없이 "아플 때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초반에는 자취생활에 들떠서 자취 생활을 하며 내가 아플 경우를 대비하지 못했다. 그것보다는 자취방에 들어갈 가구, 식료품 그리고 앞으로 이뤄질  자취 생활을 생각하며 신이 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강렬한 경험으로 내 자취생활의 우선순위가 바뀌게 되었다.  


그날은 고된 회사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당시 종종 무리한 요구를 하는 영업이 있었다. 영업은 영업 지원이었던 내게 말도 안 되는 날짜에 맞춰 샘플을 출고하라고 요구했고 공장에서는 안 된다며 버텼다. 그때 내가 왜 죄송해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공장의 출고 담당자를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겨우 두 사람 사이에서 벗어나 집을 돌아와 누웠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장이 베베 꼬이는 듯한 통증은 내가 살면서 처음 겪는 통증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배가 너무 아파서 허리를 펼 수가 없었고 나는 거북이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끙끙 앓았다. 집에 있는 배탈약을 겨우 기어가서 복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본가와 자취방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고 부모님은 마침 다른 교외 지역에 계셨다.  이에 나는 살아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근처 가까운 내과를 찾았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혼자 살 때 가장 중요한 게 "건강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플 때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말이 있지만 혼자 살 때는 말 그대로 진짜 혼자 겪어야만 했다. 나 스스로가 보호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됐다. "1인 가구"라는 뜻은 보호자가 곧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날 이후 나는 나만의 작은 응급실을 만들었다. 아플 때면 언제든 바로 응급 처치가 가능한 약을 세팅해두었다.  




쌍화탕, 까스활명수 같은 가벼운 드링크부터 감기약, 복통약, 설사약, 생리통약, 파스, 염증약, 질염약, 알레르기약, 수면유도약 등 각 증상에 따른 약이 구비되어 있다. 또 식료품만큼이나 약의 재고도 신경 쓴다. 약을 거의 다 먹을 때면 잊지 않고 그 주에 약국에 들러 약을 채워 넣는다. 한 친구는 집에 있는 약들을 보고 약 중독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채워져 있는 약통을 보고 있으면 마치 가득 채워져 있는 쌀통을 보는 것 같이 마음이 든든했다.


때로는 약이 부담스러워서 민간요법으로 해결하고 싶을 때 그에 맞는 식료품을 구비한다. 타트체리는 불면증에 좋고 매실액은 체할 때 좋다. 또 몸살 기운이 있거나 감기 전조 증상이 보이면 생강차를 끓여 먹고 생리주에는 가능한 생리통 완하에 좋은 계피를 사서 끓여 마신다. 이외에도 손따는 침, 안마 볼, 폼롤러 등 의료기구나 마사지기구들도 준비해 놓았다. 특히 폼 롤러는 뭉쳐있는 다리나 허리 등을 풀 때 탁월하다.

 



이렇듯  증상에 맞게 스스로 통증을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준비해 놓았다. 자칫 건강 염려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이렇게 신경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프다", "쓸쓸하다"부터 시작해서 "내가 왜 혼자 살아서 이 고생을 할까" 하는 온갖 우울한 생각들이 밀려온다.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차면 몸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쳐진다. 이런 증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몸을 보살 필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혼자서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을 미리 익혀두면 좋다고 생각한다. 훗날 미래에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고통을 100% 나누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그 고통을 함께 아파해줄 수는 없다. 내가 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내 고통을 온전히 이해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이 주는 외로움을 덤덤히 버틸 줄 알아야 한다.


"나만의 응급실"은 나 같은 1인 가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 살더라도 "나만의 응급실"은 준비해 놓아야 한다. 내 건강을 스스로 관리하는 것 또한 진정한 성인이 되어가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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