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생활을 하면서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요리를 하고 나면 설거지가 쌓이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빨래 거리가 쌓인다. 물때는 왜 이렇게 잘 끼는지 며칠만 지나면 화장실 타일이 얼룩진다. 창문을 닫고 나갔는데도 먼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쌓인다. 저번 주에 쓰레기통을 비운 거 같은데 어느덧 쓰레기 봉투가 빵빵하다. 참으로 쌓이고 쌓이는 삶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문득 엄마가 떠오르곤 한다. 본가에서 살 때 엄마는 항상 분주했다. 나는 엄마에게 매번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왜 맨날 이렇게 바빠?" 그럼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집이 또 다른 직장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공주 같은 딸은 아니었다. 종종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도왔다. 엄마가 빨래를 널고 있으면 옆에 앉아 빨래를 게었고 분리수거가 쌓이면 같이 나가서 도왔다. 그런데 독립을 하면서 왜 체감상 일이 많아진 느낌이 드는 걸까?오히려 혼자 살아서 일이 줄어야 하는 게 맞지만 이유를 알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정적인 원인을 찾았다.
나는 본가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었다. 철저히 객체로써 존재했다. 오늘 집안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먼지가 쌓여있어도 '어차피 엄마 있으니깐 피곤하면 하루쯤은 쉬어도 되지'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었다. 그래서 엄마와 달리 집안일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로웠다. 엄마의 보조자로서 이 정도 도와줬으면 됐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취생활에서는 나 대신 집안일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순전히 내 몫이었다.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였다. 쌓여가는 설거지, 빨래, 쓰레기들은 내 소중한 자취방을 열악한 환경으로 만들었다. 내일의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서라도 나는 집을 치우고 닦아야만 했다.
이고은 작가는 가사노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중요한 직책과 직위를 가진 사람이라도, 밤이면 집에 돌아가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새 옷을 갈아 입고 다시 사회로 나온다. 그리고 그 과정은 누군가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 만약 누군가의 노동 없이 가정에서도 그 모든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분명 원활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모든 사회 활동은 타인의 가사 노동 비용이 투자된 재투자 행위라고 봐야 한다." <출처: (브런치) 사표 쓴 엄마의 비판적 육아 에세이 [밥하는 아줌마에 대하여]- 이고은>
본가에서 엄마의 가사 노동을 통해 내 노동이 생산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보다 가볍게 엄마의 수고 정도로 여겼다. 내 노동을 유지시켜주는 기반이 되고 삶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돈을 벌어오는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한편으로 경시했는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내가 직접 가사노동을 경험해보면서 사회에서 돈을 벌어오는 노동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노동은 아직도 동등한 존중을 받지 못한 채 그림자 노동으로 취급받는다는 게 씁쓸했다.
나도 이제 퇴근을 하면 엄마처럼 또 다른 직장으로 간다. 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직장에서는돈을 벌기 위해 일 한다면 집안에서는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일한다. 적어도 나를 책임지기 위해 하는 노동은 피곤하지만 보람있다. 피로가 쌓인 만큼 성취감과 가사노동 스킬이 쌓인다.참으로 자취 생활은 쌓이고 쌓이는 생활이 아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