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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Mar 14. 2021

자취생에게 필요한 능력 : 테트리스 게임 스킬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하기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하기

추억의 게임, 테트리스를 기억하는가?

 

어릴 적 게임방에서 한 번쯤은 테트리스 게임을 해봤을 것이다. 여러 모양의 블록이 주어지는데 아래서부터 가로로 빈 공간 없이 쌓게 되면 자동으로 블록들이 상쇄된다. 가능한 오랫동안 주어진 블록들을 상쇄시켜서 블록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게임이다. 이때 테트리스의 핵심은 주어진 블록들을 잘 활용해서 빈틈없이 쌓는 것이다.


다소 결벽증이 있는 나는 테트리스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직사각형의 블록들을 빈틈없이 차곡차곡 쌓을 때면 왠지 모를 희열을 느끼곤 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면서 테트리스 게임과 멀어졌었는데 독립을 한 이후로 본의 아니게 테트리스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5평 에서 말이다.




내가 집을 구할 때 하나 간과했던 것이 바로 원룸의 단점이었다. 단지 원룸은 작은 평수의 공간 정도로만 생각했다. 여러 명이 사는 게 아니기에 나 하나 살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독립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원룸의 단점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을. 원룸은 단지 작은 평수의 공간이 아니다. "모든 공간이 합쳐져 있는 작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본가에서는 모든 공간이 기능에 따라 분리되어 있었다. 침실&서재, 거실, 화장실, 부엌, 베란다 구분된 공간 안에 배치된 물건도 달랐다. 하지만 5평 원룸에서는 이 모든 공간이 압축되어 있었다. 거실, 침실, 서재, 베란다의 기능은 한 공간에서 해결을 해야 했고 그나마 화장실과 부엌은 분리되어 있지만 겨우 한 사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이 작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씻고, 세탁물 말려놓고, 공부하고, 옷 입고, 화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살면 살수록 집안 살림은 늘어나는데 공간은 점점 부족했다. 적어도 발 뻗고 눕고 밥을 먹을 공간은 필요하기에 내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바로 "테트리스 게임 스킬"이다.  




첫째, 높게 쌓자.

테트리스 게임에서 점수를 높게 얻는 방법 중 하나는 한꺼번에 블록을 상쇄하는 것이다. 이른바 "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블록들을 높게 쌓되 절대 엉성하게 쌓으면 안 된다. 몇 개의 블록이 들어갈 정도만 남겨놓고 그 외의 블록들은 차곡차곡 빈틈없이 쌓아야 한다. 차곡차곡 블록들이 높게 쌓였을 때 마지막 한 개의 블록을 쌓음으로써 블록들이 연쇄되면서 점수를 얻는다.


나는 처음 이 집을 들어왔을 때 높은 다용도 선반을 가져왔다. 최대한 짐을 늘여놓지 않기 위해서였다. 장롱 혹은 서랍장에 차마 넣지 못한 물건들을 보관했다. 베란다의 창고 역할을 하듯 가방, 토스트기, 체중계, 쇼핑백, 옷장에 들어가지 못한 옷 꾸러미 등등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해 놓았다. 확실히 물건을 높게 쌓았기 때문에 보관한 물건 대비 집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둘째, 믹스 하자.

테트리스 게임에서는 예기치 않는 다양한 블록들이 나온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한 가지 모양의 블록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 이 블록들을  잘 조합할 줄 알아야 한다. 블록의 생김새는 다르지만 잘 맞추다 보면 그럴듯한 조합이 나온다.  


5평짜리 원룸에서 원하는 장소에 완벽히 물건을 보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능별로 최대한 물건을 나누어 진열해 놓아도 한계는 있다. 이때는 과감하게 물건을 섞어 보관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내 책상 서랍에는 남은 화장지와 콘 프라이트 포스트가 있다. 책상 위에는 손톱깎이를 화장대에는 남은 사이다를 보관하고 있. 처음에는 번잡스러워 보일 수 있으나 익숙해지면 오히려 편리해진다. 두 가지 역할을 한 번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다가 집중이 안되면 책상에서 손톱을 깎고 화장하다가 목이 마르면 나랑드 사이다를 마실 수 있다.  

셋째, 포기할 건 포기하자.

마지막으로 테트리스 게임에서 중요한 기술은 포기해야 할 때는 포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콤보 기술을 쓰기 위해 4칸짜리 긴 블록 하나 남겨둘 공간만 남겨놓고 차곡차곡 나머지 블록들을 쌓아놨다. 하지만 그 긴 막대 블록은 나오지 않고 2칸짜리 혹은 1칸짜리 블록만 나온다. 이때 미련하게 원하는 블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어느 정도 쌓였을 때는 그다음에 주어진 블록을 쌓아서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처음 이 집을 이사 왔을 때 가장 먼저 침대를 포기했다. 대신 이불과 요를 가져와서 사용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생각보다 유용했다. 잘 때는 요를 펼치고 잠을 자고 책을 읽거나 밥을 먹을 때는 돌돌 말려서 뒤에 개어 놓는다. 그럼 훌륭한 등 받침대로 쓸 수 있다. 또한 식탁도 포기했다. 밥을 먹을 땐 식탁 대신 접이식 좌식식탁을 쓴다. 좌식생활을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필요할 때만 쓰기 때문에 공간 활용도가 높다. 식사가 끝나면 고이 접어 한쪽에 치워놓으면 5평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이렇듯 5평짜리 원룸에서 실사판 테트리스 게임을 할 수 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정리할 때, 다용도 선반을 정리할 때, 옷장에 있는 옷들을 정리할 때 모든 공간이 좁은 5평 원룸 특성상 테트리스 게임을 하듯 정리할 수밖에 없다. 테트리스 게임에서 블록이 바닥에 닿기 전에 머릿속으로 빠르게 시물레이션 해보듯 숨은 공간을 캐치하여 정리하는 공간지각 능력을 활용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과소비는 줄고 정리하는 스킬이 늘게 된다. 


실사판 테트리스 게임을 하다보면 종종 웃픈 상황이 발생한다. 돈이 없어서 물건을 못사는게 아니라 공간이 없어서 물건을 사지 않게 된다. 하지만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결국 생활을 하며 필요한 물건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필요하다는 핑계로 무의미한 소비를 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실사판 테트리스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숨은 공간을 활용할 줄 알고 본가에 있을 때보다 부지런해지고 깔끔해졌다. 남은 기간 동안 테트리스의 고수가 될 수 있도록 테트리스 기술을 더 연마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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