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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Mar 15. 2021

라디오도 내 친구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하기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하기

"텔순아~"


내 어릴 적 별명은 "텔순이"였다. 내가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면 입을 벌리고 시청한다고 아버지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그만큼 나는 텔레비전을 좋아했다. 한번 시청하면 영혼이 빨려 들어간 것처럼 마냥 텔레비전을 보았다. 어릴 적부터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의 귀가가 늦어지면 항상 내 동생과 나는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습관이 되었고 텔레비전은 내 헛헛함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텔레비전이 예전처럼 편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화려한 연예인 이야기에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나 혼자 산다" 예능에 나오는  내 또래 연예인의 집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호화로웠지만 겨우 전세살이를 하는 내게는 동시에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신데렐라 로맨스 이야기는 설레었지만 그런 왕자님을 볼 기회가 없는 내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텔레비전 시청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번 텔레비전을 틀면 끊임없이 영상이 주입되었고 나도 모르게 빠져 들었다. 텔레비전을 없애볼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하루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일어나는 나로써는 텔레비전을 없앨 자신은 없었다. 적절히 텔레비전의 역할을 하면서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매체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대안은 "라디오"였다


라디오는 텔레비전처럼 영상이 나오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청취차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라디오를 틀면 고요한 자취방에 사람들의 말소리로 가득찼다. 마치 누군가와 함께 있는 기분이 들어 외롭지 않았다. 나는 부담 없이 아침저녁으로 심심할 때마다 라디오를 틀어놨고 점점 라디오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라디오의 매력은 다양하다. 짧은 시간 동안 최신 뉴스를 접할 수 있고 라디오에서 소개하는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대한 스팩트럼이 넓어진다. 또 각 라디오에서 나오는 코너를 통해 각 분야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보통 각 코너에서 영어, 미술, 심리 등등 짧은 시간 동안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시고 핵심 정보만 알려주는데 집중력이 부족한 내게는 단기간 내에 상식을 넓히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이처럼 라디오의 여러 가지 매력이 있지만 그중 내가 제일 매력적으로 느끼는 건 각양각색의 라디오 사연들이었다.


소심해 보이기 싫어서 A형인데 B형이라고 속인다는 사연, 직장 상사의 아재 개그를 받아주기 힘들다는 사연처럼 가벼운 사연부터 코로나로 무직휴급 대상이 되어 슬프다는 사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사연 등등 무거운 사연까지 다양한 사연들이 소개된다. 연애, 결혼, 직장, 양육 등의 주제들은 나도 한 번쯤 겪어본, 혹은 한 번쯤은 들어본, 혹은 겪을 수도 있는 주제들이다. 즉 나의 사연 혹은 우리들의 사연에 공감하게 되며 동질감을 느낀다.


라디오에서도 종종 연예인이 나오지만 텔레비전에서의 모습과 다르다. 텔레비전에는 보통 그들의 화려한 삶을 보여주지만 라디오에서는 우리의 삶을 들어준다. 라디오는 DJ와 청취자의 끊임없는 소통 속에서 프로그램이 이루어진다. 우리들의 사연을 공감하고 조언을 해주며 화려한 그들도 어느덧 우리의 삶에 동화된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끈 순간 허무감이 밀려오지만 라디오는 듣고 나서 마음의 여운이 남는다. 


텔레비전은 내 어릴 적 친구 같다면 라디오는 새로 사귄 친구 같은 기분이다. 인간관계도 나이가 들면서 관계가 변하듯 텔레비전은 여전히 반갑지만 이제는 약간의 거리가 생긴 친구가 되었다. 반면 라디오는 현재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친구이다. 이쯤 되면 내 별명을 "텔순이"에서 "라순이"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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