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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Mar 08. 2021

[프롤로그] 48평에서 5평 집으로 이사한 이유

48평에서 5평집으로 이사하기


48평 집에서 5평 집으로 이사 온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1년 전 그때보다 나는 이 작은 공간에서의 삶이 제법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답답해서 위장약을 먹곤 했는데, 이젠 이 공간에서 요리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심지어 요가도 한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1년 전을 떠올리면 적응한 나 자신이 뿌듯하다. 비록 적응기간이 걸렸지만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사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는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어릴 적 엄마는 나를 금지옥엽으로 키우셨다. 내가 부엌에서 조금만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면 달려오셨고, 고등학교 때까지 야자를 하면 종종 데리러 오셨으며, 심지어 직장인이 돼서도 매일 아침 딸 출근길을 창문으로 지켜보고 계신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 그렇기도 동시에 자식은 보호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해서 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1년 전 독립을 얘기했을 때 엄마는 내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아직 나는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하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전세 대출을 알아보고 전셋집을 알아봤다. 제일 저렴한 포장업체를 찾아서 나가기까지 1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야속한 딸이기는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때 나는 엄마와의 거리가 필요했다.


엄마는 유독 내 동생보다 내게 많은 관심을 쏟으셨다. 그건 내가 "첫째 딸"이 어서였다. 엄마에게는 첫째 딸에 대해 두 가지의 강한 믿음이 있었다. "첫째"는 다른 자식들보다 부모님 마음을 더 헤아릴 줄 알고 "딸"은 아들에 비해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장녀였던 엄마가 산 증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에게 순종적이었던 엄마는 나 역시 착한 장녀로서 자라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 믿음은 내가 성인이 되면서 점점 깨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음식을 먹을 때, 옷을 살 때, 외출을 할 때도 크고 작은 모든일에 관여하셨다. 나는 성인이 돼서도  스스로 어떤 것을 선택할 때 엄마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 날 수 없었다. 여러 번의 투쟁 끝에 어느 정도 선 비슷한 것을 긋기는 했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본가에서는 모든 것을 온전히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취방에서는 달랐다. 그 누구의 시선 없이, 관여 없이 온전히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과거 본가에서는 내 선택에 대해 결과가 좋지 않을까봐 눈치를 봤다. 하지만 자취방에서는 내 선택을 온전히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맛있을 것 같아서 산 시리얼이 있는데 생각보다 맛이 있지 않았다. 집에서는 다 먹지 않으면 혼이 났기 때문에 빨리 먹으려고 했지만 자취방에서는 천천히 먹거나 혹은 버릴 수 있었다. 혹은 내가 사고 싶은 고가의 마사지기를 눈치 없이 살 수 있었다. 어른들 눈에는 돈 낭비였지만 내게는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이렇게 일상에서의 사소한 결정들이 쌓여 자기 결정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이는 곧 내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쳤다. 본가에서의 나는 부모님에게 의존해야 했었다면 자취방에서의 나는 빨래, 설거지, 청소, 출근 준비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자취방의 삶이 녹록지 만은 않았다. 엄마는 처음 자취할 때 반대하시며 이렇게 말했다.


" 자취하면 다 돈이야 돈"


분명 부모님과 함께 살며 저축할 수 있는 돈은 적지 않다. 생활비, 주거비만 계산해도 월급의 절반을 저축할 수 있다. 그래서 엄마는 아직도 독립한 것에 철없는 선택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돈을 아끼며 무늬만 어른으로 살기보다는 돈을 쓰며 진정한 어른으로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내 책임 하에 결정하고 싶었다.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내가 졌기 때문에 실패해서도 성공해서도 내 몫이었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강한 믿음을 주었다. 나는 적어도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쓸모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5평이라는 집은 물리적으로 살기 편안한 공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5평 집은 나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이 험한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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