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나와 같은 세대라면 누구나 아는 그 노래. god의 ‘길’이다. 정말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때도 있었고, 이 길이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모른 체 걸어간 적도 있다. 또 알면서도 모른 척 길을 걸을 때도 있었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푸르른 나무가 조성되어 운동하기 좋은 길처럼 다져진 공원이나 저수지 둘레길 같은 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도보로 되어있는 도로 옆 길을 좋아한다. 무작정 걷다가 횡단보도를 만나면 잠시 빨간불을 보며 멈춰 있다가 초록불이 되면 건너가는 그런 길을 좋아한다. 지름길인 것 마냥 버젓이 도로 위를 걷는 육교를 좋아하고, 나만 아는 길인 것 마냥 도로 아래를 걷는 지하도를 좋아한다.
집으로 가는 길_새벽
대학교 1학년, 나는 스무 살이었다. 모든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던 그때.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새벽의 푸르스름함이 있었다. 금호동_광주광역시에 살 때, 매일 술을 마시던 친구 S와 Y가 있다. S의 집이 동림동_지금은 동천동으로 행정구역이 변경이었다. 그 동네에서 만나 술을 마시고 금호동에 살던 나와 Y는 택시비가 아깝다며 걸어서 새벽에 귀가하였다_지금 이 글을 쓰며 검색해보니 새벽에 5.2km를 걸었다. Y와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육교를 건너고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갔었다. 가던 길에 허기져 컵라면을 먹고 가자며 편의점에 들어가 또 맥주 한 캔씩을 들고 나온다. 그렇게 또 둘이 공원 벤치에서 컵라면과 맥주를 마시고 또 걷는다.
한 번은 공원에서 컵라면을 먹고 맥주를 마시다 둘이 말싸움이 붙었는데, 다시는 너랑 술을 마시면 내가 사람도 아니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아침 7시였다. 다시를 안 보기로 하고 집에 들어가 잠을 청했고, 오후 4시에 S가 전화를 했다. 뭐하냐고 아직도 자냐며 빨리 나오라고 한다. 알았다고 대답하니 S가 말한다. 택시 타고 와, 걸어오지 말고.
이 놈이 잘 모르는구나. 나는 술 마시러 가는 길은 택시를 타고 간다. 택시를 타고 가니, Y가 있었다. 그놈도 지금까지 자다가 나왔다. 우리는 또 술을 마시고, 또 새벽에 걸어서 집에 갔다.
회사로 가는 길_아침
어제의 숙취와 아침에 싸웠다. 내가 이긴 것 같은데 진 기분이다. 어제 3차를 했던_오늘새벽이니 오늘인가? 편의점에 들려 바나나우유를 산다.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바뀌길 기다리며 소주맛 나는 바나나우유를 원샷한다. 바나나우유에서 소주 맛이 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숙취에 진 것 같다. 횡단보도를 건너 먹자골목을 지나간다. 어제 2차를 했던 연탄구이집은 몇일을 문 닫은 것처럼 적막하다. 연탄구이집 옆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소주박스를 보니 Y와의 말싸움, 이모의 이건 서비스라며 가져다주는 라면과 또 싸울꺼면 내일은 오지 말라는 말_3일연속갔다이 생각나는 건 숙취가 조금 없어져서일까. 아무래도 어제 싸움에서 진 것 같다.
어제 1차를 했던 삼겹살집 옆 커피집에 들린다. 바나나우유로는 안되니 커피라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어제의 말싸움이 분해서 속이 타서 시원한 것이 먹고싶은 듯 하다. 커피에서 소주맛이 난다. 아무래도 숙취에도 싸움에도 진 것 같다.
그런데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만나서 다시 물어봐야겠다. 다시 싸워야겠다. 내가 이겨야 이 소주맛이 안 날듯하다.
퇴근하는 길_오후
5시 50분이면 메신저가 바쁘다. 어제의 숙취를 이기지 못하고 집을 가자던 여인네들은 술은 술로 푸는거라고 오늘도 고!를 외친다. 오늘도?
오늘도?라는 말에는 많은 말이 숨어있다. 오늘도 어제 간 술집을 간다는 말이고, 오늘도 어제 마신 소주를 마신다는 말이고, 어제 간 술집의 이모가 하는 말이다.
6시 정각, 나 먼저 나간다. 회사에서는 막내들끼리 뭉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한 명 한 명 따로 나가 어제의 술집에서 만난다. 어제의 술집으로 가는 길에는 우리의 수많은 술집을 지나가야한다. N이 좋아하는 포장마차를 지나갈때는 이모에게_이따 올게요 눈인사를 하고, H가 좋아하는 연탄구이집을 지나갈 때 이모에게 걸리지않게_다른데 가서 먹는다고 타박을 듣는다 앞만 보고 걸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편의점은 아마 마지막 차시에 방문할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막창집에서 나는 여인네들을 기다리면 이모는 역시 오늘도?라고 말하며 뒤돌아선다. 그리고는 주방이모에게 말한다.
“5번에 막창 3인분, 껍데기 1인분, 해물라면 한 개요.” 이모는 소주1병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하나둘 도착하고 셋이서 소주를 마신다.
N이 이따가 들린다고 포차이모한테 말했다고 하고, H는 이따가 들린다고 연탄구이집 이모에게 말했다고 한다. 아마, 편의점은 4차가 될 듯하다.
아침에 숙취에 시달리며 내가 오늘부터 술을 마시나보라던 나는 술이 달다며 소주를 원샷한다. N과 H도 술이 달단다. 4차까지 갈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