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대에 첫 발을 내딛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나의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었다.
어릴 때부터 초록색 칠판에 흰색 분필로 사각사각 특유의 소리를 내며 글씨 쓰는 게 재미있었다. 음악시간이 되면 선생님을 대신하여 손발을 동시에 사용해야 하는 고난도의 풍금을 치는 시간도 즐거웠다. 선생님의 심부름이라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고 학급을 위한 봉사는 언제나 뿌듯했다. 그렇게 선생님이라는 꿈이 내 안에 꿈틀대기 시작한 이후 꿈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갔다.
오늘은 교육대학교 예비소집일.
그토록 벗고 싶었던 교복에서 벗어나 말로만 듣던 대학생이 되었다. 화장도 하고 평소 못해봤던 염색도 하고 옷도 신발도 나름대로 대학생처럼 꾸며 보았지만 어딘가 어설프기만 한 풋풋한 새내기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초등교사가 되기 위한 필수 관문인 교육대학교와 일반 대학교의 차이는 전공 선택에 있다. 일반 대학은 전공을 결정하여 지원하지만 교대는 입학한 이후 전공을 선택한다. 교대에는 12개의 과가 존재한다. 윤리교육과, 국어교육과, 사회과교육과, 교육학과, 영어교육과, 컴퓨터교육과, 수학교육과, 과학교육과, 실과교육과, 음악교육과, 미술교육과, 체육교육과. (솔직히 입학 전에는 교대에 이렇게 과가 많은지도 몰랐다.)
그러나 교대는 사실상 전공과 상관없이 모든 과목을 다 배운다.
전공은 해당 과목의 심화 수업을 더 받고 졸업할 때 논문을 발표하거나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졸업 연주회를 하거나 작품 전시회를 하는 등 졸업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전공을 선택하는 종이 한 장을 받았다. 12개의 과가 쭉 나열되어 있고 그 옆 빈칸에 1 지망부터 12 지망까지 쓰는 방식이다. 특정 과에 인원이 몰릴 경우 소위 뺑뺑이로 돌린단다.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곳이라 전공을 정하는 방법도 초등스러운 건가.' 혼자 생각하며 담담히 숫자를 적어 내려갔다.
나는 결정 장애가 있다.
평소 카페에서 메뉴가 많으면 뭘 마실지 한참을 고민한다. 두 가지 색의 옷을 계속 비교하며 고민하다 끝내 점원에게 뭐가 더 어울리냐고 물어보고서야 쇼핑이 끝이 난다. 저렴하건 비싸건 물건도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다 사거나 아무것도 못 사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이런 내가 생각보다 전공 선택 앞에서는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예체능을 워낙 좋아하고 아무래도 일반 교과보다는 더 특색 있고 재미있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니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주저 없이 1 지망 음악과, 2 지망 체육과, 3 지망 미술과를 지원했다.
그리고 4 지망부터 12 지망까지는 별로 개의치 않아서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도 쓰고 낸 후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운 좋게 1 지망으로 음악과 33명 중 1명이 되었다. 물론 운이 따르지 않아 음악과를 12 지망으로 쓴 남자 동기도 있었는데, 도레미파솔라시도 건반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태였고 그의 음악과 생활이 어떠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 나는 교대에서 무엇을 배웠나
교대는 조별 과제가 참 많다.
동기 집에 삼삼오오 모여 밤새 과제를 하고 교구를 만드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조별 과제로 국어 교과서를 직접 제작하여 발표했다. 각종 어마무시한 교구들을 제작하여 영어 수업을 준비하고 교수님의 랜덤 뽑기로 교사로 당첨되어 우리 조의 학점을 결정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수업을 했다. (다행히 우리 조는 A를 받았으나 F를 받은 조는 그날 술집으로 향했다.)
컴퓨터 시간에 한글과 영어타자 시험을 보는데 긴장하는 바람에 영타는 재시험을 봐서 겨우 통과했다. 컴퓨터를 진짜 못하는 나는 프로그램으로 영상을 제작하는 수업에서 스트레스만 잔뜩 받다가 결국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과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 시간에는 각종 과학 실험을 했다. 과학 시험은 특이하게 오픈 북이었는데 언뜻 생각하면 좋을 것 같지만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난해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종일 도서관에서 전전긍긍하다가 찝찝한 마음으로 답지를 제출했다.
체육 시간에는 모두 고등학생처럼 운동복에 운동화를 신고 운동장을 뛰고 철봉, 앞 구르기, (지금은 사라진) 새천년 건강체조 시험을 보았다. 다른 과에서 운동 신경이 좋지 않은 여학생이 텀블링을 무리하게 하다가 허리인지 목인지 심하게 다쳐 그 종목은 폐지되는 바람에 다행히 텀블링은 피할 수 있었다.
미술 시간에는 찰흙으로 다양한 만들기를 했다. 인물을 빠르게 그리는 크로키를 노트 한 권 가득 그려가는 과제가 있어 그 노트를 늘 들고 다니며 집에서도 가족들을 그려야만 했다.
나의 전공은 음악이다.
어릴 때부터 폐활량이 좋아서인지 리코더나 단소 등 입으로 부는 악기를 좋아했고 자신도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플루트를 전공했다. 음악과는 성악, 바이올린, 클라리넷, 색소폰, 기타 등 서양악기부터 장구, 해금, 피리 등 국악기까지 원하는 악기를 4년 동안 알아서(학원, 개인 레슨 등) 갈고닦아 논문 대신 졸업연주회 발표를 한다. 학원을 다니며 아침저녁으로 틈틈이 학교 연습실에서 플루트 연습과 함께 피아노도 치며 놀았다. 피아노 실기와 합창 지도법, 사물놀이 실기와 작곡까지 그때 배웠던 수업은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밑거름이 되었다.
# 교대 신을 소개합니다
< 팔이 여섯 개 달린 교대 신 > 지금부터 교대 신을 소개하겠다.
교대 신은 손이 여섯 개나 된다. 사실은 열두 개, 아니 스물네 개, 아니 솔직히 몇 개인지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다 그리자면 너무 조잡하니 여섯 개로 줄였나 싶다. 한 손에는 교육학 책을, 다른 손에는 팔레트, 리코더, 피아노, 배구공, 발에는 축구공까지. 중고등학교 교사는 전공과목만 가르치면 되지만 초등교사는 1교시 국어, 2교시 과학, 3교시 수학, 4교시 미술, 5교시 체육, 6교시 음악...
여기에 매년 달라지는 업무는 덤이다.
학급 운영, 상담, 학부모 공개수업, 급식지도, 성적 관리, 보충 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 간의 갈등 중재, 학교 행사 참여, 회의, 각종 연수 등. 바쁜 3월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는 건 과장된 말이 아니다.
# 교대 신, 정선에 강림하다
나의 첫 발령지 정선에 교대 신이 강림했다.
워낙 시골 마을인지라 동네에 학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교과 학원 한 군데 말고는 학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전공을 살려 아이들 플루트 방과 후 특기적성을 했다. 그 학원 원장님이 플루트를 배우고 싶어 하셔서 학부모 플루트 동아리를 만들어 무대까지 올랐다. 억새풀이 유명한 민둥산 초입에 위치한 학교였기에 치어댄스팀을 만들고 지도해서 축제에 참가했다. 운동회의 꽃 단체 무용 치어댄스를 지도하느라 구슬땀을 뺐다. 사물놀이 공연을 위해 꽹과리를 들고 운동장 흙바람을 맞으며 목이 터져라 외치며 무사히 공연을 해냈다.
# 아이들이 활짝 꽃 피울 때까지
폭넓지만 깊이는 부족해 보이는 초등교사로 살다 보면 가끔 나는 뭘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나에게 소위 말하는 '전문성'은 있기라도 한 건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순간이 온다. 나도 많이 고민했다.
초등교사는 아이들이 전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초 공사'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누군가는 기반을 다지고 누군가는 골조를 세우며 누군가는 시멘트를 바르고 누군가는 인테리어를 할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아무리 화려해 보이는 건물이라도 기초 공사가 부실하면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교사의 삶이 비록 고단할지라도 내가 어린 시절 교사의 꿈을 안고 지금껏 성장해 온 것처럼,
아이들의 꿈의 씨앗에 사랑 한 스푼 담아 물을 주고 양분을 뿌리리라.
지금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그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덧 땅 속 깊이 뿌리내리고 하늘 높이 가지를 뻗어
저마다 찬란한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날이 반드시 오리니,
보이지 않는 열매를 눈앞에 보듯
오늘도 내일도 나는 묵묵히
또한 기쁘게 이 길을 걸어가리라.
♡밤작가 초아의 에세이, 듣다♡
'교대 신'은 손이 열개라도 모자란다고? / 교대에 첫 발을 내딛다 / 교대 신을 소개합니다 / 교대 신, 정선에 강림하다 / 첫 발령지 정선에서 살아남기 / 초등교사 브런치스토리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