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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빛소리 Apr 06. 2024

사라진 몽블랑 펜

도벽이 심한 아이

# 도난 사건 발생


  오늘은 즐거운 현장체험학습 날이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한껏 기대에 부푼 마음이 느껴진다. 일 년 중 가장 신나는 날이리라. 그런데 아침부터 사건이 터졌다.

선생님, 저 지갑에 있던 5천 원이 사라졌어요.

우리 반 여학생이 분명 지갑에 5천 원을 넣어왔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단다. 지갑을 꺼낸 적도 없다고 한다. 누가 훔쳐간 것 같다고 한다.


'하필 오늘 같이 즐거운 날, 하루쯤은 조용히 지나가면 어디가 덧날까. 5학년 아이들 16명과 함께 하는 일상은 바람 잘 날이 없구나.'


  학급운영은 망망대해를 1년 동안 항해하는 배와 같다.

교사는 키를 잡은 선장이고 학생들은 배에 올라탄 선원이다. 선장이 선원을 선택할 수 없고 선원이 선장을 선택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배에 올라탄 이상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거친 파도와 싸우며 시시각각 어떠한 일이 닥쳐올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르는 책임 또한 선장의 몫이기에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학급에서 물건이나 돈이 사라지는 일은 왕왕 있는 일이다.

친구의 물건이 탐나서 몰래 가져가거나 간혹 돈을 훔치는 일도 벌어진다. 지금은 학교의 곳곳에 cctv가 자리 잡고 있어서 아이들 간의 학교 폭력 사안이나 도난사건 또는 사소한 몸싸움 등이 있을 때 대부분의 장소는 cctv에 잡힌다. 올해 내가 맡은 업무 중 하나가 학교폭력이기에 얼마 전 학부모님의 요청으로 행정실에 있는 cctv를 확인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 제도적으로 cctv를 설치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당시 학교에는 cctv가 없었다!


  우리 반 아이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이들은 마치 범인을 알고 있는 것처럼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한 여학생을 지목했다.


"선생님, 쟤 도둑년이에요. 분명 쟤가 훔쳐갔을 거예요."


우리 반 남학생이 친구들이 다 들을만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아,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걸까. 같은 반 여자아이에게 도둑년이라니..."


  아직 조사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솔직히 돈을 훔쳐간 건지 잃어버린 건지도 모를 일이다. 참 애매한 상황이다. 아이는 돈이 없어졌기에 훔쳐갔다고 하지만 어른들도 돈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지 않나. (나 같은 어른은 드물겠지만) 예전에 내가 현금 쓴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갑에 있던 현금이 내가 생각한 금액보다 많이 줄어있어 누가 내 지갑을 건드렸나 착각한 적이 있다. 어른도 이러할진대 아이들은 오죽할까.


# 범인을 찾아라


  일단 돈을 훔치고 말고를 떠나서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한 남자아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cctv가 없으니 이런 경우 목격자를 찾거나 그마저 없으면 자백하도록 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단순히 분실했을 수도 있지만 도난 사건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 당시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고전적인 방법을 써 보았다.  


"다 눈감고 엎드립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반 여학생 지갑에 있던 5천 원이 없어졌어요. 잃어버린 걸 수도 있지만 혹시나 우리 반에 가져간 친구나 본 친구가 있으면 선생님이 볼 수 있게 살짝 손을 들어주세요. 이 일은 절대 비밀로 하고 혼내지도 않을 테니 조용히 손 들어주세요."


"......"


  교실에 적막이 흐른다.

이런 상황에서 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실 눈을 뜨고 몰래 주변을 살피는 아이들이 꼭 한 둘은 있다. 그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눈을 꼭 감고 엎드리라고 말한다. 몇십 초가 지났을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버스를 놓치겠다. 한 명씩 불러 유도 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참 답답한 상황이다. 버스 타러 갈 시간이 다 되어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 충격적인 이야기   


  점심을 먹으면서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했다.

오늘 돈을 잃어버린 아이가 있는데 분실인지 도난인지 알 방법이 없어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이 학교에 가장 오래 근무하신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침에 남학생이 '도둑년'이라고 지목했던 아이의 이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우리 반 A(그 여학생)는 그 동네에서 도벽이 심한 아이로 2학년때부터 유명했단다. 보통의 어린아이들이 단순히 친구의 물건이 탐나서 학용품 등에 손을 대는 수준이 아니라고 했다. 선생님들이 모아 둔 회비 봉투를 통째로 가져가는가 하면 심지어 교회 헌금에도 손을 대어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의 전력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우리 학교는 6 학급이니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년 동안 계속 같은 반이다. 학교 친구들은 서로 가까운 이웃사촌이나 다름없으며 동네에 사람 자체가 적어 다 알고 지낸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교회 헌금까지 손을 댔으니 주의를 주었던 남학생이 '도둑년'이라고 한 말은 안타깝게도 '근거 있는 말'이었다!


# 목격자가 나타나다


  다음 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평소 A와 친하게 지내던 여학생 B도 오늘따라 일찍 등교했다. B는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치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목격자 : "선생님, 저 할 말이 있는데요..."


나 : "응, 무슨 일이니?"


목격자 : "저... 사실 어제 A가 지갑에서 5천 원 꺼내는 거 봤어요..."


나 : "그랬구나. 왜 어제 얘기 안 했어?"


목격자 : "친구를 고자질하는 것 같아서 얘기 못했어요 선생님..."


나 : "아, 그랬구나. 이건 고자질하는 게 아니니까 괜찮아. 오히려 친구의 잘못된 행동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게 더 나쁜 거란다. 선생님이 비밀로 할 테니까 걱정 말고."


목격자 :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점심시간에 A를 빈 교실로 잠깐 불러 차분히 물었다.


나 : A야,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어. 혹시 어제 친구 지갑에 손댔니?


A : 아니요.


나 : 음... 돈을 가져갔다고 해도 혼내지 않을 거야. 선생님은 A가 솔직하게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어.


A :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저 아닌데요?


나 : 사실 A가 친구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걸 본 친구가 있어.


A : 네? 누가요?


나 : 그건 말할 수 없으니 솔직하게만 얘기해 주렴.


A : (그제야 고개를 푹 숙이며) 제가 가져갔어요...


  A는 고모가 용돈을 주지 않아서 그랬다고 다.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A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안 계셨다. 고모 손에 컸는데 고모도 아이가 감당이 안 돼서 거의 포기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염없이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온다.


'아이가 잘못한 건 맞지만 과연 이 아이만을 탓할 수 있을까. 결국 아이를 이렇게 만든 건 어른들이 아닐까...'


  나는 A를 다독여주었다.

다음부터 절대 친구의 물건이나 돈에 손대지 않기로 약속했다. 돈은 선생님한테 가져오면 주인에게 돌려주고 이번 일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 두 번째 도난사건

      

  생일 선물로 친한 친구들이 합심하여 몽블랑 펜을 선물해 주었다.

좋은 선생님이 되라는 의미 있는 선물이었기에 교실에서 늘 그 펜을 업무수첩에 끼워놓고 사용했다. 그런데 내 펜이 어디 갔는지 안 보인다. 물건을 깜빡하는 습관은 있지만 교실 아니면 관사 아니면 내 가방에 있어야 할 펜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도난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정말 난감했다.

 cctv가 없는 이상 누가 가져갔는지 알 방법은 없다. 다른 펜이었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의미 있는 소중한 물건이었기에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애가 탔다. 꼭 찾고 싶었다. 점심을 먹고 관사에 잠깐 들어가 보았다. 관사는 학교 안에 있기에 잠깐 왔다 갔다 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오래된 관사의 현관문은 자물쇠와 열쇠로 잠가놓고 다녀야 하는 구조다.

문을 열고 3평 남짓한 내 방에 들어갔다. 관사에는 화장대 겸 책상으로 쓰는 자그마한 좌식 책상 하나가 있는데 그 위에 물건들의 배치가 왠지 모르게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느낌이 쐐하다. 뒤를 돌아 창문을 보았다. 꽤 큰 창문이다. 창문은 항상 굳게 닫아 놓았지만 잠가 놓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창문이 조금 열려있는 게 아닌가! 


'하아... 누가 창문으로 들어와서 내 물건을...?'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내 관사는 1층이고 창문의 크기를 보니 어른은 무리지만 초등학생 몸집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드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에 A가 스쳐 지나간다. 교실로 돌아간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아끼던 펜 너희도 알지? 선물 받은 거라고 지난번에 얘기했던 그 펜이 없어졌어. 혹시 본 사람 있니?"


  아이들이 술렁인다.

나는 지난번 5천 원 사건 때처럼 눈을 감게 하고 범인을 찾지는 않았다. 그건 우리 반 아이들 모두를 의심하며 용의자로 만드는 일이었다. 차마 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A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A가 범인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나의 직감으로 A를 불러 네가 가져갔냐고, 선생님 관사 창문으로 들어와 내 물건에 손댔냐고 추궁할 수는 없다. 설사 가져갔다고 해도 관사 창문을 잠그지 않은 내 책임도 절반은 있으니 어찌 아이만을 탓하겠는가.


  그 아이는 아프다. 

어릴 때부터 마땅히 부모님께 받아야 할 사랑의 부재로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못한 뻥 뚫린 마음을 물건으로 채우려는 몸부림이었으리라.


  소중한 펜의 존재가 나에게서도 조금 잊힐 즈음, 아이들을 한 명씩 만나 상담 시간을 가졌다.

나는 A에게 펜의 행방을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 아이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어른이 되었으니 어른을 대신하여 나의 소중한 몽블랑 펜을
그 아이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그 아이의 아픈 마음을 이렇게나마 위로하려 한다.

♡밤작가 초아의 에세이,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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