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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빛소리 Apr 04. 2024

잊지 못할 가정방문

그 아이의 속 사정

# 초등교사 만나는 아이들


  초등학교는 모든 교육기관을 통틀어 가장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6년 동안 아이들은 신체, 정신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하여 아직 책상보다는 바닥 생활이 익숙한 1학년을 지나 2~4학년 시기에는 자기주장이 뚜렷해지며 또래 관계에 민감해진다. 고학년이 되면 변성기로 목소리가 제법 굵직해진 남학생들과 호르몬 변화로 여드름 고민에 빠져 거울 앞에 선 여학생들이 한 층 예민해진 표정으로 사춘기의 시작을 알린다. 방학만 지나도 몰라보게 쑥 자라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들의 성장 속도를 내 눈이 더디게 따라가는 듯하다.


  이 말은 초등교사의 스펙트럼 또한 넓고 깊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 학년 담임을 맡을지, 또는 전담교사를 할지 나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도 있으나 학교의 사정에 따라 언제 어느 학년을 맡게 될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매 년 바뀌는 새로운 업무도 발 빠르게 파악하고 추진해야 한다. 심지어 강원도는 오지가 많은 지역 특성상 집에서 거리가 먼 곳으로의 원치 않는 발령이라는 변수까지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어떤 능력보다 교사가 갖추어야 할 자질은 단연코 1학년에서 6학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매일같이 만나는 아이들의 다양성특수성을 담아내는 일이다.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교직에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났다.

일 년 내내 말을 하지 않는 극내향적인 아이,
자리를 바꾸기 싫다는 이유로 이마에 큰 혹이 생길 정도로 책상을 머리로 들이박거나 화나 나면 책상을 단번에 뒤집어엎는 아이,
이유 없이 남녀 가리지 않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
ADHD(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장애)로 끊임없이 부산하게 무언가를 그리거나 가위질하며 수업에 집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
반별 체육 시합에서 졌다는 이유로 상대편 친구를 때려 결국 학교 폭력으로 신고된 아이,
편식이 심하여 옆에서 한 시간 동안 같이 밥을 먹어줘야 하는 아이,
말할 때마다 반드시 욕을 섞어야만 하는 아이,
재미 삼아 학교 건물 벽에 우유 폭탄을 던져 터뜨려 그 장면을 목격한 교장선생님께 불려 간 아이...

 

  내가 만났던 아이들을 열거하자면 24시간이 모자란다.

아마 이렇게 쭉 적어 내려간다면 책 한 권은 거뜬히 출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까지 샘솟는다. 해마다 나의 교실에서 어떤 아이를 마주하게 될지 예측하는 일은 신의 영역이리라.


# 5학년 담임이 되다


  2008년 3월. 작년 2학년에 이어 올해는 5학년 담임이다. 

2학년은 28명이었는데 5학년은 16명이라고 한다. 인원이 줄어든 만큼 마음의 부담감도 조금 내려간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인원이 적으면 한 명 한 명에게 더 관심을 쏟을 수 있고 발표를 할 때도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간다. 교실 공간도 더 넓게 사용할 수 있고 수업 시간에 집중시키기도 수월하며 평가를 포함한 학생들의 다양한 기록을 남기는 생활기록부의 부담 또한 적어지기에 학급 당 학생 수는 15명 내외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학생 수가 적어졌기 때문에 작년보다는 수월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그저 나의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모든 학급에 '힘든 아이 1~2명은 꼭 있다'라고 말할 때 다른 아이들은 그래도 평범함의 범주에 들어가곤 한다. '평범하다'는 말은 다른 말로 '무난하다, 보통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평범한 학생은 '가정에서 보호자의 보호를 받고 청결 등 개인위생 관리가 되며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가져오고 숙제를 해 올 수 있는 학생'이다.


  담임이 되면 아이들의 특이사항을 인수인계받는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어떠한 정보를 전해 들으면 편견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특이사항이 아닌 이상 대체로 담임을 맡아 아이들과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부분이 훨씬 크다. 5학년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작년 4학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으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한 명 한 명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평범한 아이들이  1~2명' 있는 것 같았다.


# 초라한 아이


  학기 초, 유난히 내 눈에 띄는 남학생이 있었다.

정현이는 자주 교실 바닥에 드러눕곤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 보였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맞닿아 빠는 습관으로 입술 주위는 늘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옷을 좋아해서인지 선택할 옷이 없어서인지 거의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머리 모양새를 보니 오늘도 머리를 안 감았나 보다. 잘 안 먹는 건지 못 먹은 건지 원래 살이 안 붙는 체질인지는 모르겠으나 또래 아이들보다 마른 몸이 오늘따라 초라해 보인다. 게다가 평소에 숙제를 해 오는 일도 드물다. 그날도 정현이는 준비물을 안 가져왔다.


"이번 미술시간에는 재활용품으로 만들기예요. 각자 가져온 준비물 책상 위에 올려놓아 볼까요?"


"네 선생님."


  미술 시간은 체육 시간 다음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가져온 준비물을 꺼내며 만들기를 할 생각에 들뜬 모양새다. 그런데 정현이의 책상 위가 휑하다.


"정현아, 미술 준비물 안 가져왔니?"


"......."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은 채 말이 없다. 나는 '선생님 모드'가 되어 이렇게 말했다.


"준비물이 없으면 미술 시간에 어떻게 하려고 안 챙겨 왔니? 오늘은 친구랑 같이 쓰고 필요한 건 선생님이 줄 테니까 다음에는 꼭 챙겨 와."


# 잊지못할 가정방문


  정현이가 안 보인다.

보통 아파서 결석을 하거나 체험학습을 하는 경우 신청서를 사전에 제출한다. 나는 사전에 받은 연락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싶어 집에 전화를 했는데 통화 연결이 안 된다. 내심 걱정되어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교감선생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쭈었다. '가정 방문'을 하라신다. 가야지. 담임인데. 당연히 가야지.  


  그날 수업을 마치고 나는 학생명부에서 그 아이의 집 주소를 찾았다.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마을이 있는데 우리 학교 아이들은 대부분 그 마을에 산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차를 끌고 빠르게 주소지를 찾아갔다. 그 마을에는 아파트가 한 채도 없다. 대부분 주택이다. 나는 공간지각력이 상당히 떨어져서 4학년 사회 교과서에 지도가 등장하면서 사회를 포기했다. 지도 노이로제가 있어 내비게이션이 없이는 길을 쉽게 잃어버리곤 하는 나는 심각한 길치다. (심지어 네비를 보면서도 길을 잘못 들곤 한다.)


  다행히 마을이 크지 않고 집도 많지 않아 주소를 보고 집을 찾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주소가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대문 앞에 섰다. 이 집은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볏짚으로 지붕을 만들면 초가집. 지붕을 기와로 꾸미면 기와집. 이 집은 지붕을 판자로 만들었으니 '판잣집'이 맞는 표현이겠다. 대문을 두드렸는데 인기척이 없다.


'집에 아무도 없나? 어떡하지? 일단 들어가 보자!'


  다행히 대문은 열려있었다. 난생처음 하는 가정방문에 살짝 긴장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눈앞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한쪽 벽에는 연탄이 쌓여 있었고 닭 몇 마리가 사이좋게 뛰놀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좁은 마당 뒤에 방과 주방이 있었다. 나는 정적을 깨며 조심스레 말했다.


"안녕하세요? 정현이 담임인데요, 누구 계신가요? 혹시 정현이 집에 있나요?"


그제야 주방에서 정현이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고추장이 벌겋게 묻은 고무장갑을 낀 채 버선발로 나오시며


"아이고, 선생님, 정현이가 오늘 아파서 학교에 못 갔더래요."


강원도 정선 사투리가 구수하다. 할머니는 김치를 담그고 계셨다.


"정현이가 학교에 안 왔는데 전화가 안 돼서요.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어미아비도 없이 이 할미가 혼자 이렇게 키우는데 아플 때 제일 안쓰럽지요."


"네. 정현이 얼굴만 잠깐 보고 갈게요 할머니."


  단칸방에 정현이가 누워있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이불을 깔고 누워 시름시름 앓고 있는 정현이는 내가 온 것을 보고도 그대로 누워있다. 많이 아파 보였다. 정현이가 누워있던 방의 지붕은 많이 기울어져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그 방 앞에 서서 정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앉았다.


"정현야, 약 먹고 아무 걱정 말고 푹 쉬어. 몸 괜찮아지면 학교에서 만나자. 선생님 갈게."


  나는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할머니께서 나를 부르신다. 김치를 좀 싸드릴까 하시는 걸 정중히 거절하고는 대문을 조심스레 닫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교실에서 만났던 정현이가 학교보다 더 많은 시간 머무를 저곳이 눈에 밟혀 가슴이 먹먹했다. 이제 곧 겨울인데 할머니와 둘이 연탄으로 추운 겨울을 지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관사로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며 생각했다.

숙제 못 해와도 준비물 못 챙겨 와도 다 괜찮으니까,
부디 건강하게만 학교에 나오렴.
그것만으로 충분하단걸 선생님이 이제야 알아서 미안해.

  그날 이후, 아이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테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거나 나무라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도 우리처럼 하루하루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정현아, 벌써 스물 여덟 청년이 되었겠구나. 할머니는 잘 계시는지.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는지. 너의 얼굴이 선명히 떠오르는구나. 부디 건강히 잘 지내고 있기를...


♡밤작가 초아의 에세이, 듣다♡

아직도 연탄을 뗀다고? / 초등교사가 만나는 아이들 / 잊지 못할 가정방문 / 5학년 담임이 되다 / 초라한 아이 / 첫 발령지 정선에서 살아남기 / 초등교사 브런치스토리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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