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에서 후다닥 뛰어가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층간소음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 집 건물은 1층 밖에 없었으니까. 그것은 세 마리의 쥐가 달리기 시합을 하는 소리였다. 가끔 그 녀석들이 바깥세상이 궁금한지 천정에서 바닥으로 내려올 때면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름 귀여웠다. 쥐는 내가 좋아하는 햄스터보다는 덜 귀여웠지만 그래도 닮아 있어서 봐줄 만했다.
내가 진짜 싫어하는 손님은 따로 있었다.
부엌 서랍을 열면 그것들이 날 보고 놀란 듯 후다닥 어딘가로 숨는 모습을 매일 목격했다. 방에도 수시로 출몰했다. 어느 날은 자다가 일어났는데 살결을 스치는 느낌이 쐐해서 쳐다보니 그 녀석이 내 몸에 기어가고 있었다. '바퀴벌레'는 크기도 색깔도 다양했다. 전 세계적으로 약 4000종의 바퀴벌레가 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아무리 박멸하려고 별 수를 다 써봤지만 그들의 번식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인지 나는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곤충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학교에서 10m 남짓한 곳에 위치하는 관사는 3층 건물이었다.
불행히도 2~3층은 이미 다른 선생님들과 교직원들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정선 산골짜기 1층 관사에는 수시로 불청객이 찾아왔다. 뒷다리를 잡고 있으면 마치 방아를 찧는 것과 같이 아래위로 움직이는 행동을 보이는 '방아깨비'가 놀러 왔다. 집 현관에 찾아온 녀석을 보고 많이 놀라긴 했지만 움직이는 모양새가 재미있는 구석이 있어 조금 관찰했다. 현관문을 열어두니 다시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조용히 나가주었다.
두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그 녀석은 모기, 파리, 바퀴벌레 등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 익충이다. 그러나 가늘고 긴 여러 다리와 물결치듯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며 달려가는 등의 흉측한 용모로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미움을 사 왔던 불쌍한 벌레, 흔히 '돈벌레'라고 알려진 그리마이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벽에 이 녀석이 50개나 되는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내 비명소리에 2층에 살던 선생님이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놀라서 달려왔다. 나는 거의 울먹거리며 저거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소연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근처에 있던 빗자루로 그 녀석을 쫓아내 주셨다. 관사에 혼자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세 번째 손님은 중학교 때 동고동락하던 녀석이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 알던 크기가 아니었다. 정선 산골짜기의 기운을 받아 몇 배나 진화한 것 같았다. 그 녀석이 방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온몸에 닭살 돋았다. 이번에도 윗 층 사시는 선생님께 도움을 청할까 하다가 벌레가 나올 때마다 선생님께 SOS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는 스스로 해결해 보기로 했다. 에프킬라를 찾았다. 나는 그 녀석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정확하게 녀석을 향해 에프킬라를 방사했다. 내 경험 상 이 정도 뿌렸으면 날개 근육이 마비되기 시작하면서 다리를 바둥거리며 끝내 호흡근까지 마비되어 사망해야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이 계속 움직인다. SOS를 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오랜 시간 에프킬라를 뿌려본 건 처음이었다. 바퀴벌레 주변 바닥이 액체로 흥건해졌다. 에프킬라 통을 흔들어보니 분명 새것이었는데 반쯤 가벼워졌다. 그렇게 나는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
# 검은 생명체의 출현
그날도 수업을 마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관사 문을 열었다.
3평 남짓한 내 방을 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했다. 까맣고 작은 생명체들이 지름 약 40~50cm 넓이의 원을 만들어 방 한가운데 떼로 모여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어제저녁 일이 떠올랐다.
좌식 책상에 앉아 심심한 입을 달래려 과자 한 봉지를 뜯었다. 과자를 먹으면서 책상 앞 벽을 타고 줄을 맞춰 질서 있게 지나가는 그들을 보았다. 네다섯 마리, 아니 일곱여덟 마리쯤 되었다. 바퀴벌레에 비하면 동글동글한 생김새가 귀엽기까지 하다. 지난번처럼 에프킬라를 사용할까도 생각했으나, 바닥도 미끌미끌해질 뿐만 아니라 고약한 가스 냄새도 견디기 힘들어 다른 방도를 찾아냈다.
필통 옆에 스카치테이프가 보였다.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는 '살생유택(殺生有擇)'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최대한 인간다움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기에 나의 행동에 큰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않기로 했다. 스카치테이프를 뜯었다. 벽에 줄지어 지나가는 그들의 위에 조용히 그것을 붙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 방법이 최선이었을까 스스로도 내 행동에 물음표가 생기긴 하지만 그땐 그것이 최선이었나 보다. 그렇게'개미'들은 졸지에 끈끈한 스카치테이프 속에 영원히 갇히고 말았다.
개미는 매우 사회적인 곤충이다.
그들은 고도로 조직화된 집단에서 산다. 또한 페로몬이라고 불리는 화학 신호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러한 능력을 기반으로 길을 표시하고 위험을 알린다고 한다. 아마도 어제 스카치테이프 안에 갇힌 이들을 구출하고자 가족, 친척에 친구들까지 동원되었나 보다. 일일이 다 세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수 백, 아니 수 천마리쯤 되어 보이는 개미들이 모조리 내 방에 총출동했다. 과자부스러기도 한몫했으리라. 또 SOS를 칠까 했지만 이번에도 스스로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 보기로 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방 한가운데에 무리지은 그들에게 에프킬라를 사용하면 그 뒤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방이 온통 미끌미끌해질 텐데 나는 오늘 그 위에 이불을 깔고 잘 수 있을까?'
'지독한 가스 냄새를 밤새 맡으면 혹시 내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닐까?'
임용고시보다 더 어려운 시험 문제의 정답을 찾아야만 했다.
그 많은 아이들을 죽인다면 그 죄로 무시무시한 지옥에 갈 수도 있으니 나는 그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때 내 눈에 작은 핸디형 진공청소기가 들어왔다.
"유레카!"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어느 날 목욕탕에서 물체의 부피만큼 물이 밀려나가는 원리를 발견하고 그 기쁨에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에서 뛰쳐나왔다는 유명한 일화처럼, 나도 그에 견줄만한 위대한 정답을 찾고야 말았다. 나는 진공청소기에게 거기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개미떼들에게는 고통을 주어 미안하기도 하고 혹시 부상을 입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버튼을 눌렀다.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그들은 삽시간에 진공청소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신을 원망했다. 청소기를 들고 관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청소기를 빠르게 분리하여 그들을 안전하게 방생하는 데 성공했다. 혹여나 청소기 안에 그들이 붙어있을까 하여 야무지게 탁탁 털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에프킬라를 사용하지 않길 잘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스카치테이프 속에 영원히 갇혀버린 그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잠을 청했다.
그때의 기억은 분명 '고통'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을 극복했던 경험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27층 아파트 거실에 앉아 글을 쓰는 새벽, 그 시절을 회상하며 웃을 수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세월을 묵묵히 인내한 대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평범함'속에 감춰진 '행복'이라는 보물을 찾는 능력이 나에게 생겼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