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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빛소리 Apr 14. 2024

나는 '사랑의 매'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더니

# 전 세계에서 62번째 '아동 체벌 금지' 국가


  2011년 도구와 손발을 이용한 체벌을 금지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제정돼 법적으로 학생에 대한 체벌이 일부 금지됐다. 

2015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고, 2021년 자녀에 대한 부모(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이 삭제되면서 체벌의 전면적 금지가 법제화됐다. 1979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핀란드(1983년), 노르웨이(1987년) 등 북유럽을 중심으로 체벌 금지를 법제화했으며, 대한민국은 2021년 아동에 대한 체벌을 금지한 62번째 국가가 되었다.

< 노란색으로 표시된 체벌 금지를 법제화 한 국가 / 출처 : Baby News >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올바르게 훈육하기 위해 체벌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과, 그래도 체벌은 폭력이나 학대로 번질 가능성이 있으니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학교는 가정과 달리 교사 1명이 다수의 학생을 통솔, 지도하고 훈육해야 하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체벌은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사랑의 매'


  나는 12년의 긴 학창 시절을 거치며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체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교칙을 위반하는 불량 학생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때 새벽까지 공부에 시달리다 아침에 못 일어나기 일쑤였던 나는 아슬아슬하게 정문이 닫힌 후 도착하여 지각생의 반열에 오르곤 했다. 지각생들은 순서대로 줄을 지어 바닥에 '엎드려뻗쳐'를 했고 엉덩이에 몽둥이찜질을 받은 후 운동장에 있는 쓰레기까지 줍고 교실로 들어갔다. 한 번은 무슨 일인지 정문을 지키는 선생님이 안 계셔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교실로 올라가는 길에 선생님과 마주쳤다. 그냥 적당히 보내줄 법도 한데, 또 엎드리란다. 계단 옆 한 구석에서 엎드려 엉덩이를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여학생들은 교복이 치마였는데 구지나 바닥에 엎드려 다 큰 여고생의 엉덩이를 때려야만 했을까 싶다.


  고 1 때 우리 반 남학생은 배우 지망생이었다.

그는 웬만한 남자 선생님보다 훤칠하게 컸고 촬영이 있는 날에는 학교에 종종 빠지곤 했다. 머리도 다른 친구들보다 좀 더 길었고 교복 핏도 남달랐다. 물론 학교 공부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듯 보였고 성적은 하위권이었다. 선생님들은 특별히 성적이 낮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의 매'의 강도를 최고조로 높이 듯했다. 그날 학교에서 별명이 '미친개'로 통하는 학생부 남자 선생님이 우리 반을 방문했다.


  선생님은 복장 단속을 하시는 것 같았는데 그 남학생이 레이더 망에 포착되었다. 

그 친구는 선생님께 불려 나갔다. 머리 길이와 교복을 지적받은 모양새다. 교실 앞 복도에서 곧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배우 지망생이기 때문에 머리와 복장이 그러하다는 남학생의 말을 본인에 대한 반항쯤으로 들었는지 자기보다 키 크고 잘생긴 학생에 대한 열등감이 폭발했는지, 선생님은 '사랑의 매'가 아닌 '맨 손'으로 남학생을 때리려 손을 높이 올렸다. 그 순간 남학생은 선생님의 손목을 잡았다. 혹시 나를 속이려고 '몰래카메라'를 찍는 건가 하는 합리적 의심마저 들었다. 지금껏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는 것은 많이 봐왔기에 익숙했지만 학생이 선생님의 '손지검'을 방어하는 건 낯선 장면이었다.


  선생님은 거의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 

갑자기 그는 웃통을 벗어던졌고 늘어진 흰색 러닝셔츠와 맨살이 훤히 드러난 차림으로 쌍욕과 함께 학생의 멱살을 잡았다. 교실이 술렁였다. 액션 영화에서만 보던 사투극이 곧 펼쳐질 것만 같았다. 나는 폭력적인 장면을 더 이상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누가 교무실에 얘기했는지 남자 선생님들이 달려와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 후 그 남학생이 교무실로 끌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 남학생이 맨 손으로 맞거나 멱살을 잡힐 만큼 크게 잘못한 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미친개'에게 물리지 않고 방어한 건 정말이지 통쾌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체벌에 관한 경험은 이 외에도 많다.

엎드려 자는 여학생이 깨워도 일어나지 않자 화가 난 선생님이 도저히 화를 참지 못하고 여학생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머리를 책상에 박아서 깨웠던 일, 선생님이 100대를 때린다는 말에 때리시라고 오기를 부린 남학생의 엉덩이를 진짜로 100대 때리는 과정에서 마대 자루가 세 개나 부러진 일 등.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던 '사랑의 매'를 경험하며,
내가 선생님이 되면 '사랑의 매' 따위는 절대 들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 서당의 '회초리'로부터 내려온 뿌리 깊은 전통


  내가 정선으로 발령받은 때는 2007년.

학생이 지켜야 할 교칙을 위배하거나 불손한 언행으로 선생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때 체벌을 가하는 분위기는 내가 교단에 섰을 당시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랑의 매'는 학교 어디에나 있었다. 손으로 뺨을 때리거나 발로 차는 등 신체를 직접 사용한 체벌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지만, 서당에서 훈장님이 종아리를 때리며 훈육했던 뿌리 깊은 전통을 이어받아서인지 길이 30cm, 지름 1cm 정도의 나무 막대기는 적절한 체벌 도구로 여겨졌다.     


  초임 교사였던 나는 아이들이 내 말을 순순히 잘 따를 줄 알았다.

폭력을 싫어하는 극 평화주의자였던 나는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면 나를 잘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학 첫날부터 '자리에 앉아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거 아니냐'는 2학년 남학생의 발언을 시작으로 28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나 혼자 힘으로 통솔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든 게 미숙했던 신규 교사 시절, 적절한 규격의 '사랑의 매'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목소리로만 아이들을 집중시키다가는 성대 결절로 교직을 그만두게 될 것만 같았다.


# '배운 게 도둑질'이라더니


  '배운 게 도둑질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주먹질, 싸움질, 걸레질, 망치질, 칫솔질, 이간질 등 세상에는 많은 '질'이 존재하건만 왜 하필 '도둑질'일까? 아마도 '도둑질'이 잘못 배운 것이 평생 간다는 의미를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살갗처럼 내 몸에 붙어 있어 떼어 낼 수 없는 내가 배운 '도둑질'은 안타깝게도 그토록 혐오하던 '체벌'이었다.  


 처음부터 '사랑의 매'를 훈육의 도구로 쓴 것은 아니다.

나의 사랑의 매는 책상을 '탁탁탁!' 쳐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거나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순간적으로 큰 소리를 내서 짧은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도구였다. '교사용 종'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그 종소리조차 아이들의 목소리에 묻히기 일쑤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사랑의 매'라는 것은 교사만 휘두를 수 있는 특권이 있는 물건이기에 들고 있으면 선생님의 권위도 살고 아이들이 만만히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하나 숙제를 안 해오고 수업시간에 늦고 친구를 괴롭히고 심한 욕설사용했다.

매일 같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훈육했지만 아이들의 부적절한 행동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반성문도 이미 시도해 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체벌' 말고 다른 뾰족한 수는 없어 보였다. 다른 선생님들도 이미 단체기합을 주거나 특수한 경우 아이들에게 '사랑의 매'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나도 이상은 안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급식 먹으러 갈 시간이었다.

씻고 줄을 세워 급식실로 이동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테스트라도 하듯 말을 듣지 않았다. 소위 엉망진창이었다.


'기껏 친절하게 대해줬더니, 만만하게 보고 이 녀석들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을 했나.'   


나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  

다 엎드려뻗쳐!

  순간 교실은 찬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한 번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이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하나 둘 엎드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단체 기합'이다. 분명 모두가 내 말을 듣지 않은 건 아닐 텐데 잘못 없는 아이도 덩달아 벌을 받아야 한다. 한 배를 탔다는 이유로 무고한 아이들까지 피해를 입는 것이다.


  아이들이 전부 엎드렸다. 

나는 '사랑의 매'를 꺼내 들고는 아이들의 엉덩이를 타격했다. 나의 학창 시절 선생님들이 그러했듯, '이왕 체벌을 하는데 강도가 약하면 그 효과가 떨어지지 않나'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맞았던 것처럼 몽둥이를 세게 휘둘렀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참은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정당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울음 섞인 아이들을 급식실에 앉혔다. 배가 고팠지만 이대로 밥을 먹었다가는 체할 것 같아 점심을 포기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텅 빈 교실에 앉아 있으니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순간 교사라는 절대 권력을 이용하여 '사랑의 매'를 가장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이들의 눈물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한동안 꺽꺽거리며 울음을 토했다.


# '사랑의 매'를 쓰레기통에 버리다


  그 사건 이후에도 나는 종종 단체기합을 주었다. 체벌에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숙제를 안 해오면 손바닥 1대, 또 안 해오면 2대 등 나름 아이들과 합의하여 학급의 규칙을 세워 체벌의 수위를 조절했다. 감정이 섞이면 위험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래도 '교육적인 효과'를 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생각도 틀렸다는 것을 아이들이 증명해 보였다. 오늘도 숙제를 해 오지 않은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맞을 때 잠깐 아프고 마는데 까짓 거 맞고 말지 뭐."


  '교육'의 목적은 '변화'다. 

반복되는 체벌은 아이들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체벌을 할 때 약간의 비웃음이 섞인 듯한 아이의 표정도 발견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겁을 먹을 정도로 점점 강도를 높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교권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의 매'가 오히려 나의 '교권'을 떨어뜨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마저 들었다.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던 나날들.

SBS 희망교육 프로젝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부터 각종 교육, 교사, 교수법과 관련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아이들을 다루는 것이 왜 그리도 힘들었는지 그 해답을 찾아갔다. 오은영 박사 열풍을 일으켰던 '금쪽같은 내 새끼'를 가만히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이들의 문제는 부모가 그 원인이 되는 경우를 적잖이 볼 수 있다. 교육 관련 책에 비추어 본 나는 조금 과장을 보태어 '형편없는 교사'였다.


  나는 '아이들'이 아닌 '나'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권위적인 말투는 친절하게, 설명은 아이들이 정말 이해하기 쉽게, 판서는 미리 고민해서 계획적으로,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며 하나씩 실천했다. 아이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였고 소리치지 않고도 많은 아이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익혔다. 나의 작은 '변화' '노력'은 아이들이 먼저 감지했다. 그렇게 '사랑의 매'는 점차 나에게서 멀어졌고, 3년 차가 되던 해 그동안 많은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랑의 매'를 교실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체벌'과 '폭력'의 경계를 오가는 '사랑의 매'를 다시는 들지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체벌 금지법이 가뜩이나 힘겨운 교사의 권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사랑의 매를 버린 지난 10여 년이 넘는 세월, 나의 권위를 세워주었던 것은 체벌이 아니었음을.

아이들을 진정 변화시키는 힘은
'차가운 사랑의 매'가 아닌 '따뜻한 사랑'이라는 것을.



 ♡밤작가 초아의 에세이, 듣다♡ 

선생님과 학생의 난투극? / 한국은 전 세계에서 62번째 아동 체벌 금지 국가 /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사랑의 매' / 서당의 회초리로부터 내려온 전통 / 초등교사 브런치스토리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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