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서 2년 차 초임교사 시절 나의 5학년 제자들과 만났다. 15년 세월이 훌쩍 지나 스물여덟 청춘이 되어 있을 녀석들을 만날 생각에 살짝 들뜬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늘 만날 아이들은 브런치스토리 '특별한 결혼식'의 주영이와 '잊지못할 가정방'의 주인공 강현이다.
주영이는 정선에서, 강현이는 경기도에서 왔다.
주영이는 스승의 날이면 잊지 않고 안부를 전했던 고마운 제자다. 강현이에게 연락을 하여 이번 만남을 주선했다. 약속 장소 근처에서 제자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언뜻 보아도 둘 다 나보다 훌쩍 커 있었다.
"얘들아!"
"어머, 선생님!"
"일찍 왔네. 주차하고 들어갈게. 이따 보자."
나는 근처서점에 들렀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이들에게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무언가 선물하고 싶었다. 톨스토이의 '사색 노트'가 내 눈에 들어왔다. 좋은 글귀와 나의 생각을 적을 수 있는 노트였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서둘러 계산하고 식당으로 갔다.
< 제자들에게 선물한 사색 노트 >
드디어 아이들과 마주 앉았다.
열두 살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이 그때의 얼굴을 그대로 하고는 훌쩍 커 있었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주영이는 청소년 교육 관련 일을, 강현이는 카페 일을 하고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15년 전 정선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소환했다. 작은 동네였기에 아이들은 6 학급이었던 초등학교에서 내내 같은 반이었으며 중, 고등학교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락을 나누는 친구들도 있고 끊어진 친구들도 있단다. 아이들의 이름을 꺼내보았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잘 지내는지궁금하네."
"선생님, 생각나는 친구 있으세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썼던 세 명의 제자 중 둘을 마주하고 있자니, 나머지 한 명의 안부가 궁금했다.
'사라진 몽블랑 펜'의 주인공 A다.
"혹시 A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강현이는 모르는 듯 보였다. 주영이가 뭔가를 알고 있지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게 영 이상했다.
"음... 그게..."
"왜? 무슨 일 있어?"
"선생님, A는 3~4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들었어요..."
"뭐라고? 세상에. 어린 나이에 어쩌다..."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A와의 추억을 상기하며 쓴 글에 그 아이가 잘 살고 있을 거라는 응원의 댓글들이 뇌리를 스쳤다. 나도 그 아이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계는 스물넷청춘에서 영원이 멈춰버렸다. 세상을 등질만큼 힘겨웠을 그 아이의 삶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그 아이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꺼내며 무거워진 분위기를 돌렸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스티커사진을 찍고 카페에 갔다.
주영이는 편지를 담은 예쁜 꽃을, 강현이는 직접 만든 브라우니라며 수줍은 듯 건넨다. 참 예쁜 아이들이다. 카페에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 혹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주영 : 전 4~5학년으로 가고 싶어요.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4학년 선생님도 찾아뵙고 싶어서 교육청에 문의했는데 다른 지역으로 가셔서 연락이 닿지 않더라고요.
초임 교사 시절.
시행착오 가운데 늘 부족했던 기억으로 아쉬움이 깊게 남았던 그때를 행복했다고 말해주니 스스로 조금 위안이 되었던 것일까.5학년 담임이었던 나와의 시간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다고 하는 제자가 참 고마웠다.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소중한 선물 >
사실 주영이가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은 내가 브런치에 올렸던 자신의 이야기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15년 세월을 넘어 다시 만나게 해 준 브런치에 고마움을 전한다. 내가 3~4년 전에 글을 썼더라면 혹시 A도 함께 만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맴돈다. 하늘의 별이 된 A에게 전하는 편지로 정선에서의 추억을 마무리하려 한다.
A에게
까무잡잡한 얼굴에 단발머리를 하고 별처럼 반짝이던 너의 눈동자를 기억한단다. 우리가 함께 했던 2008년, 혹시 너도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을까. 너의 소식을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있었을까. 많이 힘들었지? 이곳에서 꽃 피우지 못한 너의 청춘, 부디 고통 없는 그곳에서 활짝 피우렴. 보고 싶구나! 부디 편안히 잠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