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주로 발령을 받았고 정선을 떠나기 전 마지막 송별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교생이 120명 남짓 되었던 작은 학교의 선생님들과 행정실 직원들과 영양선생님까지 15명 안팎의 전 교직원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았다. 맛깔스럽게 익어가는 삼겹살을 앞에 두고 다 같이 술잔을 채웠다. 교장선생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이번에 발령을 받아 정선을 떠나게 되는 교직원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작별 인사를 고하는 시간이다. 내 순서가 되었다. 고되고 힘들었던 이곳을 그렇게도 떠나고 싶었건만, 마지막 인사말을 하려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감정을 추슬렀다.
"신규 발령받아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저를 막내라고 예뻐해 주시고 많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자꾸만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이미 눈에는 금방이라도 왈칵 쏟아져버릴것 같이 그렁그렁 맺힌 눈물에 시야가 흐려졌다.
근엄하지만 따뜻하셨던 교장선생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교감선생님, 선생님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셨던 여장부 멋쟁이 교무부장님,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뜨렸던 늘 의지가 되어준 언니 선생님, 학급 운영부터 아이들에 대한 애정까지 정말 배울게 많았던 배테랑 선배님, 통기타와 노래로 행복을 선사해 주셨던 기간제 선생님, 투박한 듯 구수한 사투리로 '박 선생'을 부르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행정실 기사님까지.
결국 '수도꼭지'가 터지고 말았다.
흐르는 눈물은 폭포수가 되었고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꺼억꺼억 목놓아 울고 말았다. 직장 동료와의 이별이 이렇게까지 힘들 줄이야! 생각 이상으로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2년의 관사 생활은 고됐고 아이들은 힘들었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는 깨달음이 이별 앞에서 뒤늦게 찾아왔다.
# 정선, 안녕!
관사에 올 때보다는 살림살이가 늘었지만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내 차에 다 실릴 정도였다. 그래도 여러 선생님들과 기사님들이 짐을 차에 싣는 것을 도와주셨다. 짐을 차에 다 옮겨 싣고 나니 정말 내가 발령받아서 이곳을 떠나는구나 실감이 났다. 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주러 다들 마중 나와 주셨다. 회식 때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거리며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서인지 떠나는 날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건강하세요!"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차에 올라타 관사를 빠져나왔다. 백미러로 손을 흔들어주는 이들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학교를 찾기 위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도로를 달리던 날, 귀신의 집을 방불케 했던 학교 안 관사 생활,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잊지 못할 가정방문, 도벽이 심한 아이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던 날, 관사에 둘러앉아 민둥산 두릅나물에 초고추장을 찍어 먹던 날, 학교 안 비닐하우스에서 통기타와 노래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던 별이 쏟아지던 밤..
정선이 아니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던 소중한 경험들은 어느새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되어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늘 가까이 있어 그 존재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때가 많다. 만남이 있으면 언젠가 이별이 있음을 기억하자.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소중한 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