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도 조금의 시간이 필요해요." "Even miracles take a little time."
-신데렐라-
오늘은 제가 담임을 맡았던 5학년 남학생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준서는 평소 말 수가 적고 생활 전반적으로 의욕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손을 들고 발표하는 일은 없었고 시험을 보면 대부분 교과에서 60점 이하, 4~50점을 받을 때도 있었어요. 저는 종종 아이들이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쪽지시험을 보았는데요, 그날은 사회 교과에서 ‘조선의 건국 과정’을 쓰라는 쪽지시험을 보았습니다. 물론 사회 시간에 쪽지 시험을 볼 예정이니 공부를 해오라고 모든 아이들에게 사전에 알려주었습니다.
시험 날이었습니다.
A4 용지를 반을 잘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고 아이들은 종이를 받자마자 연필을 바쁘게 움직이며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눈에 띄는 한 명이 있었으니 바로 준서였습니다. 저는 조용히 그 아이 옆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빈 종이에는 반, 번호, 이름만 적혀있었어요. 공부를 해오지 못했는지 준서는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시험을 끝내고 쪽지를 걷어오는데 예상대로 준서의 종이는 깨끗했어요. 그 아이는 평소보다 더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저는 준서를 향해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준서야, 오늘 공부를 못 해왔나 보네. 괜찮아. 시험은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게 목적이니까 다시 공부하면 돼. 선생님은 시험 못 본 걸로는 혼내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시간이 지나 5학년을 마쳤고 저는 다른 지역,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어요. 이듬해 같은 반이었던 여학생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저 예은이예요. 잘 지내시죠? 작년 저희 반 친구들도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께 소식 전해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 준서 아시죠? 이번에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가서 입상했대요! 요즘 진짜 공부 열심히 하더라고요. 선생님께 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소식 종종 전할게요. 선생님 건강하세요.”
작년 제자들의 안부를 전해온 예은이의 긴 문자 메시지를 받으니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도 한글을 떼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친구들이 능숙하게 구구단을 외울 때 다음 학년이 되어서 겨우 외웠던 학습 부진아였거든요. 수학 10점도 받아본 저는, 교사가 된 후로 유독 공부가 느리거나 시험을 못 본 친구들을 혼낸 적이 없어요. 그 아이의 지금 모습이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혹시 남들과 비교하며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지.
숨 막히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잠시 멈춰서 나만의 호흡과 속도로 묵묵히 나의 하루를 걸어갑니다. 그 속에서 잔잔한 기쁨과 감사함 또한 잊지 않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