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Walden)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안녕하세요. 이번 회차는 멤버십이 아닌 무료로 올리려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데이비드 헨리 소로(David Henry Thoreau)는 1817년 7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족으로는 아버지 존 소로와 어머니 신시아 던바, 그리고 누나 헬렌과 형 존, 여동생 소피아가 있습니다. 소로는 항상 콩코드 주변의 숲과 강, 호수와 언덕을 다니며 자연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독서를 즐겨했으며 하버드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동서양의 고전까지 다양하게 공부했지만 졸업 후 세속적 성공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고, 사람은 육체를 움직여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화학은 공부하되 자기의 빵이 어떻게 구워지는가는 배우지 않으며, 기계학은 배우되 빵을 어떻게 버는가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p.83, 은행나무)
그리하여 측량 일이나 목수 일과 같은 정직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평생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의 길을 찾으려 애를 썼습니다.
그는 랠프 월도 에머슨(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 초월주의 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의 제자입니다. 그는 초월주의에서 말하는 우주 자연과의 교감과 그 자연 속에서 개인의 자립이 실제로 가능한지 확인해 보려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2년간 직접 자연 속에서 생활했습니다. 또한 그는 시인이자 철학자, 과학자, 측량사, 사회운동가이며 생태주의의 선두 주자로 인정됩니다.
더불어, 소로는 생태주의자로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과 어우러진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수필에서 ‘시민 불복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노예제를 강하게 반대하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이 개념에 대해선 작품분석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출판된 책으로는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의 일주일>, <월든> 두 편이지만, 잡지와 신문사에 수 많은 단편 에세이와 시를 기고했습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4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위치한 월든 호수, 이곳에서 작가는 실제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두막을 짓고 생활하며 그곳에서 경험한 자연의 경이로움과 조화롭고 간소한 삶에 대한 예찬을 써 내려갔습니다. 섬세하게 표현된 동물들의 일상부터 세속적 사회에 대한 풍자까지 한 권에 담은 작품은 총 1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숲 생활의 경제학 2.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 3. 독서 4. 숲의 소리들 5. 고독 6. 방문객들 7. 콩밭 8. 마을 9. 호수 10. 베이커 농장 11. 보다 높은 법칙들 12. 이웃의 동물들 13. 집에 불 때기 14. 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겨울의 방문객들 15. 겨울의 동물들 16. 겨울의 호수 17. 봄 18. 맺는말
먼저 소유에 대해서, 작가는 불필요한 지출과 허영 가득한 부의 축적을 비판합니다.
“부유층은 단지 편안할 정도의 따뜻함이 아니라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뜨거움 속에서 살고 있다. ”(32p, 은행나무)
“공적인 주택이나 개인 주택 할 것 없이 우리들의 주택 가운데 많은 수가 그 안에 사는 주민들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을 한다.” (p.212, 은행나무)
의복은 ‘속세의 번뇌’로 표현했으며 정말 필요한 생활 필수품만 있으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먹을 것, 그것도 육식이 아닌 간소한 식사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각자의 개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나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이지, 결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의 길을 가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p.111, 은행나무)
작가는 선에 대해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다음에는 묵묵히 구두끈을 묶으라며 무언가를 바라는 선은 진정한 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인디언처럼 소박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시 한번 간소한 삶에 대한 지향을 주장했습니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p.141, 은행나무)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간소해야 한다고 말한 작가는 고독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임을 강조합니다.
“사색을 함으로써 우리는 건전한 의미의 열광 속에 빠질 수 있다.”(p.204, 은행나무)
또한, 작가는 미국의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했으며, 올바른 정치인의 모습을 <논어>에서 인용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대, 정치하는 사람들이여, 형벌을 쓸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대들이 덕을 사랑하면 백성들도 덕을 사랑할 것이다. 윗사람의 덕은 바람과 같고 평민의 덕은 풀잎과 같다. 풀잎들은 그 위에 바람이 불면 고개를 숙이게 되어있다. -논어” (p.260, 은행나무)
“그러나 참다운 미국은 그런 것들(차와 커피와 고기)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활양식을 자유로이 추구할 수 있는 그런 나라여야 하며, 또 노예제도나 전쟁을 국민이 지지하도록 국가가 강요하고, 그런 물건들을 사용하는 데서 직접 간접으로 초래되는 쓸데없는 비용을 국민이 부담하도록 강요하는 일이 없는 나라여야 하는 것이다.” (p.309, 은행나무)
자연에 대한 예찬과 섬세한 문장력, 간소한 삶과 독서, 철학과 고독이 필수여야 한다고 말하는 이 책은 작가가 살아오면서 했던 넓고도 깊은 통찰을 이 한 권에 모두 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월든>은 작가가 1845년부터 1847년까지 모든 사회적 활동을 멈추고 월든 숲속에서 홀로 살며 깨달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국 수필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사실 그의 생전에는 크게 각광받지 못했으며,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뒤늦게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작품입니다.
당시 미국은 산업혁명 직후(영국에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으로 시작해 19세기 유럽과 북미, 아시아로 확산)로 노동과 부의 성공에만 관심이 쏠리던 시대입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확립되었고 경공업과 전기, 중화학 공업이 급속도로 발달했지요. 하지만 이 시기에 작가는 모든 걸 내려놓고 초월주의 사상을 실천하고자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초월주의란,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발생한 운동입니다. 자연과 개인의 내면에서 신성을 발견하려는 사상으로, 인간과 자연에는 본질적인 선함이 존재하며 자기 신뢰와 독립을 해야 최상의 상태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치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있음은 없음이고 없음은 있음이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 실제로 미국의 초월주의자들은 불교또한 초월주의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사치와 허영심을 멀리했고 종교에 기대어 생활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경험은 종교가 아닌 개인의 내면에 집중할 때 진실로 얻을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초월주의와 함께 하나 더 알아야 할 개념은 ‘생태주의’인데요. 이는 환경주의와 같은 말로 환경 문제를 포함한 여러 인류 위기가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심층적인 사회 문제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물질적 풍요를 얻은 반면 환경파괴는 심해졌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환경 보호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이 생깁니다. 유럽에서는 20세기에 녹색당이 창당되면서 노동 의제에만 관심이 있었던 정치에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당시 미국적 이념을 비판의 원인으로 삼았습니다. 산업화와 근대화에 사로잡힌 시대의 흐름을 거부한 작가는 내면의 풍요로움, 검소한 삶, 자급자족의 생활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이기와 탐욕을 경계했고 평판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강조하며 이를 노예 제도에 빗대어 비판했습니다.
“지금 남부와 북부에는 인간을 노예로 만들려고 눈을 번뜩이는 악랄한 노예 주인들이 수없이 많다. 남부의 노예 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북부의 노예 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노예 감독일 때이다.” (p.22, 은행나무)
여담으로 사실 소로의 자연 속 거주지는 그의 후견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사유지입니다. 그는 미국 내 유명한 강연자로 소로와 함께 초월주의 동호회를 만들었고 동양적이고 이상적인 문학 작품을 다수 발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에머슨은 자신의 문학적 열정을 소로에게 투영해 그를 지원하고 지지했습니다. 둘은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으나 소로가 폐렴에 걸려 죽을 때가 되어 극적으로 화해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시민의 불복종>에서 제안한 이 개념은 민중 대다수가 국가와 지배권력층의 정책, 법률이 부당하거나 도덕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이를 거부하거나 위반하는 행동을 뜻합니다. ‘시민 불복종’은 엄밀히 따지면 불법이므로 이후 자신에게 주어지는 법적 처벌을 감수해야만 하는데요. 흔히 무정부주의로 오해되는 이 주의는 작가가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작가는 단지 정의롭고 도덕적이며 양심에 따라 지배되는 정부를 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두세(사람의 머릿수에 맞추어 내는 세금)를 제외한 모든 세금에 반대하지 않았고 교육에 대한 세금은 투자 및 후원으로 보고 적극 찬성했습니다.
“첫 번째 여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오후, 나는 구둣방에서 구두를 찾으려고 마을에 갔다가 체포되어 투옥을 당했다. 그 이유는 다른 데(시민 불복종)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나는 의사당 문 앞에서 인간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축처럼 매매하는 국가에게는 세금을 낼 수 없었고 그 권위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p.258, 은행나무)
실제로 작가는 흑인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며 항의의 표시로 세금 납부를 거부했습니다. 그리하여 29살에 수감되었지만, 친척의 대납으로 극적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작가는 노예해방 운동가인 존 브라운을 만나 뜻을 함께하기도 했으며, 브라운이 연방정부에 체포되었을 때, 소로는 ‘존 브라운 대위를 위한 탄원’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간디, 마틴 루터 킹, 레프 톨스토이등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139p, 은행나무)
“진정한 부를 즐길 수 있는 가난,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p.295, 은행나무)
두고두고 읽어야 하는 책이 있습니다. 수많은 명언을 서술한 책도 아니고 큰 울림을 주는 책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런 책은 10년 전 읽었을 때와 10년 후 읽었을 때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10년 동안 강산도 변할 뿐더러 나 자신도 긍정적인 방향이던, 부정적인 방향이던 어딘가로 흘러가 있을 테니 말이에요.
지금 읽은 월든과 10년 후의 월든은 분명 다른 책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삶을 영위하는 행위에 대한 깊은 통찰’을 그때는 조금 더 깊이 음미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빠른 길만이 옳은 것이라며 허겁지겁 달렸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책을 읽고 다짐한 것이 있다면 주어진 오늘을 급하게 삼키는 것이 아니라 꼭꼭 씹어먹어 그 맛을 온전히 느끼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 인간은 행동의 동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의 하루는 매우 평온한 것이며 인간의 게으름을 꾸짖지 않는다.” (p.171,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