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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가 상했어

by 김초아

분명 냉장고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온 남편이 정리하며 이렇게 말했으니까 말이다.

“브로콜리도 냉장고에 넣어 둘게.”

그때 내가 뭘 했더라, 책을 보고 있었나, 아니면 첫째와 놀고 있었던가. 아무튼 브로콜리를 데쳐 먹으려 사 오라고 부탁했던 건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지금 브로콜리의 상태를 보니 허옇고 끔찍한 곰팡이가 피어 있다. 벌써 그렇게나 지났던가? 생각해 보니 열흘 정도 된 듯했다.

열흘 동안 냉장고 속에서 울고 있던 브로콜리가 생각난 건 전날 저녁 냉장고를 열어 요구르트를 꺼내 먹던 남편 때문이었다.

“냉장고 안에 브로콜리도 있어. 내일 해서 먹어.”

아 맞다, 깜빡했네. 얼마 안 됐으니 크게 상하진 않았겠지?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브로콜리를 꺼냈다. 살펴보니 상한 부분만 도려내 데쳐 먹으면 크게 문제없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더 상해 있었다. 착각이었다.


그래도 안쪽은 괜찮지 않을까. 칼을 꺼내어 줄기를 뎅강 잘랐다. 하지만 브로콜리는 구석구석 안쪽까지 모두, 까맣게 썩어 있었다.

아니, 고작 열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상했다고? 벌써?


벌써, 이미 오래전부터-

다시 브로콜리를 바라봤다.

살릴 부분만 살려 먹을까,

다만 그다지 살릴 곳이 없었다.


버려진 브로콜리와

살면서 버린 냉장고 속 채소는 몇 개일까.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이 상하는 동안

정신없이 사느라 내 마음이 상하는 것도 모른 채 살아온 나는.


좋았고 미웠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지난날을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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