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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Sep 12. 2024

책임은

에세이_봄은 따로 오지 않는다 27

나는 물고기를 키운다. 키운 지는 햇수로 삼사 년 된 것 같은데 공부를 덜 해서인지, 바쁘다는 핑계 뒤로 숨은 게으름 때문인지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 것 같다.

구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이 다시 자라 새끼를 낳고. 그 모습이 경이롭고, 소중했다. 생명이란 이런 것이구나. 꼬물꼬물한 물고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귀한 그 무엇. 

구피의 출산 과정 중에는 배가 빵빵해진 암컷을 어느 타이밍에 따로 분리해 주어야 할지가 가장 중요했다. 구피는 수컷이 지속적으로 배를 쪼아주어야지만 새끼가 나오기 때문에 충분히 쪼인 다음 곧 나올 것 같을 때 분리를 해주어야 한다. 그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면 빼내도 새끼를 낳지 않는다. 그렇게 배가 빵빵해진 물고기가 있으면 나도, 어미도 온 신경을 동원해야 건강하게 새끼를 낳을 수 있었다. 

한 마리의 물고기에게도 어마어마한 책임감이 필요했다.

 

어느 날부터 어항에 이끼가 날이 갈수록 무성해졌다. 

나는 다시 수족관을 찾았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수족관이 딱 하나뿐인데 사장님 부부는 늘 친절하시고 물고기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마트에서 파는 물고기는 오래 못 산다며 관리조차 잘 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셨고, 귀찮을 법도 한데 마트에서 물고기를 샀다가 한두 마리씩 용궁으로 보내고 도움을 요청하러 온 이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처음엔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사장님께 물어보니 비파라는 어종이 이끼 청소에는 제일 탁월하다고 했다. 지금은 작지만 커지면 어른 팔뚝만큼도 커지니 그럴 땐 다시 가져오고 새로 작은 물고기를 데려가도 괜찮다고 하셨다.

수족관 한 칸에는 그렇게 다시 돌아오게 된 비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비파를 데려왔다. 물고기는 우리 식구가 되어 어항을 눈 깜짝할 새 깨끗하게 청소해 주었다. 벽에 주둥이를 대고 쩝쩝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귀엽다며 ‘쩝쩝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쩝쩝이는 점점 커졌고, 청소는 무척 잘해주었지만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양의 똥을 쌌다. 덩치도 너무 커져 본래의 모습과 다른 약간의 징그러움이 느껴졌다.

다시 수족관에 갔다. 비파는 원래 똥을 많이 싼다고. 하지만 그 뜻은 그만큼 청소를 잘한다는 뜻이니 물 관리만 자주 해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바쁨을 가장한 게으름을 가진 나는 물을 새로 갈아도 며칠 만에 온통 초록색으로 바뀌는 어항을, 쩝쩝이를 감당하기에 벅차했다.

 

“이건 마치 체구가 작은 여성이 상근이 키우겠다고 하는 거랑 같은 거지. 나중에는 개한테 끌려 다니는 거야. 그래도 키우는 동안은 잘 키웠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남편은 물고기를 수족관에 다시 보내 주기로 한 날 꺼내며 말했다. 

그래.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을 벌였어야 했는데.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일을 시작했구나.

이 좁은 어항에서, 물고기들도 자기들끼리 참 많이 힘들었겠다. 어쩌면 고통스러웠을지도.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에 수족관을 나와서도 한동안 물고기가 생각이 났다. 

“너보다 더 잘 키워줄 거야. 우리가 버린 것도 아니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줬잖아.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돼.”

남편의 말에 약간의 안도와 후회가 섞인 미지근한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대학 시절, 추운 겨울날 자취방을 돌아가는 길에 길 잃은 아기 고양이를 보았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는데 버스 정류장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애처로웠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찬 바람을 타고 나에게 구슬프게 다가왔다.

나는 함께 가던 친구들에게 근처 마트에서 밥이 될 만한 것을 사서 주자고 했다. 그러나 한 친구가 반대했다.

저러다 굶어 죽을 수도 있는데 왜 반대를 하냐고 묻자 친구는 말했다.

“고양이는 똑똑해서 한 번 밥을 먹은 장소에는 꼭 다시 돌아와. 너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하루도 안 빠지고 밥 챙겨줄 수 있어?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나아.”

 

책임의 책은 꾸짖을 책(責), 임은 맡길 임(任)이다.

어떤 일에 대하여 그 결과에 대해지는 의무나 부담을 뜻한다.

그 뜻은 책임의 주체는 내가 아닌 상대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의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이 힘겨워한다면 그에 대한 결과와 꾸짖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반드시 책임 속에는 사랑과 배려, 존중과 상대를 위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책임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기만과 농락, 나만을 위한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어, 어떡하지? 에라 모르겠다.’라고 도망치고 숨는 순간 어항 속 물고기들은 숨조차 쉬기 힘든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아기 고양이는 어쭙잖은 도움에 자기 인생의 모든 희망을 걸고 결국 상처만 남았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호의를 베풀었어도 상대방에게 아니었다면 그것은 아닌 것이다.

 

책임진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하고 용감한 일이다.

책임질 수 없다면, 하루빨리 인정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놔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책임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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