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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Sep 10. 2024

작가를 만난다는 설렘

에세이_봄은 따로 오지 않는다 26

지난 주말, 우리 동네 도서관에 특별한 강연이 있었다.

그림책 작가 ‘소복이’님과 초등학생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강연은 아이들과 인문학적 대화도 나누고 만화도 그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이곳에서 흔치 않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놓치지 않으려 냉큼 신청을 했더랬다.

신청 후 아이와 함께 서점에서 소복이 작가님의 책 ‘왜, 우니?’를 구매해 보았다. 문장 하나 하나가 커다란 울림을 담고 있는 책을 보며 경외심과 호기심이 들끓었다.

“엄마, 떨려.”

평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첫째는 진짜 만화가 이자 그림책 작가를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는 떨림을 나에게 내비쳤다. 괜찮다고 긴장하지 말라는 나 자신이 사실 더 떨렸다는 걸 아이도 알까?

‘사실 엄마도 진짜 작가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란다. 엄마도 너무 떨리고 설레.’


작가라는 직업을 그저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생각한 날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에세이를 써 보니, 작가는 부단히도 부지런해야 하고 매일 고통스러운 고뇌를 해야 하며 나보다 타인의 마음을 훨씬 더 많이 생각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몇 날 며칠을 머리 싸매고 내 안의 무언가에게 외쳐도 마땅한 이야기 소재가 떠오르지 않는가 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 하나 때문에 저녁 밥이 술술 넘어가지 않는 체증을 견뎌야 하는 직업이었다.

경제적인 것은 크게 괘념치 않아야 하며 가족들에겐 늘 미안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

‘넌 안 될거야.’ 라는 잊혀질만 하면 부활하는 자기 부정이라는 악마와 싸워 이겨야만 하는 것이 작가였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한 날 부터 그 모든 것을 해낸 저자의 이름을 꼭 본다.

“엄마, 작가를 만나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야?”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그럼! 작가가 이 장면을 그릴 때, 이 문장을 쓸 때, 어떤 생각으로 쓰고 그렸는지 알 수 있고 작가의 삶과 경험을 들을 수 있는 멋진 시간이지!”


‘책을 몇 권이나 출간하고 유명해진 작가의 분위기는 어떨까?’

아이를 강연장으로 들여 보내는데 저 멀리 소복이 작가님이 보였다. 주황색 모자와 동그란 안경이 본인의 신체 일부처럼 잘 어울리고 단발이 수수함을 더했으며 미소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인물.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하면 누구나 한번 쯤 떠올릴 만한 이미지의 모습이랄까. 그녀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은 인자함과 아이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더해진 순수함을 흩날리고 있었다.

보호자도 참여 가능해 나도 함께 듣고 싶었지만 어린 둘째를 돌봐야 했기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다.


두 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선물로 나누어 준 책에 직접 사인을 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작가님의 사인은 독특하게도 휘리릭 쓰는 사인이 아닌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책 마다마다에 나오는 주인공을 앞장, 혹은 뒷장에 마음을 담아 그리며 아이와 짧게나마 대화도 한다고.

사인을 받으며 말했다. “저희 아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매일 그림을 그려요.”

내 말에 작가님께서는 환한 미소로 아이를 바라 봐 주었다.

“와~ 정말? 선생님도 어렸을 때 매일 혼자 집에서 그림 그렸어. 너도 나처럼 그림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니?”

그 질문에 아이는 대답을 망설인 채 멀뚱히 작가님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왜 대답을 망설였을까?

“괜찮아. 아직 모를 때지. 어머니, 보통 어릴 때부터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커서도 그림을 그리더라고요. 그런데 제 남동생은 입시 미술을 했고, 저는 혼자 그렸는데요. 남동생이 저보다 그림을 훨씬 잘 그려서 제가 너도 이렇게 동화책을 써 보라고 권해도 본인은 그게 잘 안 된요. 아무래도 틀에 너무 갇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입시 미술을 아이가 원하지 않거나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스스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진심 어린 조언과 대화를 나눈 후, 도서관을 나오며 나는 아이가 귀찮아 할 정도로 종알종알 물었다.


“어땠어? 생각나는 이야기 있어? 즐거웠어?” 라는 질문에 엄지를 척 올리는 아이.

“엄마, 소복이 작가님은 남동생이 있는데 어렸을 때 동생하고 많이 싸웠대. 집에 방은 두 개 밖에 없었고 남동생은 어릴 때 죽음을 무서워 했대.”

그 이야기를 담은 책이 ‘소년의 마음’ 이었다.

그런데 왜 작가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몰라... 아니, 자신 없어.” 였다.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위로 해 주었다. 그 대답을 들은 나는 마음이 시큰했다. 누군가 나도 위로를 해주었으면 싶었다. ‘내가 무얼 잘못해 아이가 이런 대답을 하게 만들었을까. 난 또 부족한 엄마야.’ 라는 생각이 사라지도록 말이다.

그렇지만 다시 짹짹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니 아이에게는 잊지 못할 특별한 시간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날 밤 노트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나도 작가가 되어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가 되어 오늘 만난 소복이 작가님을 다시 만난다면 정말 꿈만 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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