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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Sep 02. 2024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것

에세이_봄은 따로 오지 않는다 24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냥 눈이 불편해서일 거야. 비염도 있잖아. 코가 자주 막히고 가렵다고 그랬어.”

나의 아이가 틱 증상을 보인 것이 세 달 전이었던가, 네 달 전이었던가.

단순히 태블릿 화면을 많이 봐서, 비염기가 있어서 눈을 깜빡이고 얼굴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너무 걱정이 많은 나는 이미 ‘초등학생 틱’과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보고 겁이 났고, 걱정되었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우리 그렇게 다 지나왔잖아.’ 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엄마, 나랑 놀자. 이것 봐. 엄마! 엄마!!!”

아이가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엄마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힘겨운 아이다. 늘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엄마를 찾고, 아빠를 찾고, 혼자서는 무얼 하고 놀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24개월까지, 2년 동안 나의 팔베개를 해야만 잠을 잤다. 엄마가 잠시만 사라져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두려움에 울고 나에게 혼이 나도 나를 쫓아 오는 아이. 아이를 안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장실 볼일을 봤다. 

여섯 살까지 엄마와 헤어지는 게 싫다며 어린이집 앞을 눈물바다로 만든 아이. 동생과 자신 중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묻는 아이. 동생이 실수하면 이때다 싶어 실수를 지적하며 오빠는 너보다 잘 한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

지금도 혼자 나가는 것이 무섭다며 주방에 물을 먹으러 갈 때도 나와 함께하는 아이.

잠을 자다가도 옆에 아무도 없으면 깨 엄마를 찾는 아이.

사실 너무나도 힘겨운 아이이다. 어린 시절 나와 똑같다.

“너도 나중에 커서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 봐라!”

내가 엄마 속을 썩일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 말대로 되었다. 

그런데 내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건 나와 너무 닮아서, 왜 이 아이가 이토록 겁에 질리고 힘들어 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차마 무서워도 참고 너 혼자 가서 물을 마시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 마음 잘 아니까.

어쩌면 예민한 내가 아이를 이렇게 키운 것은 아닐까. 남들의 말처럼 휘뚜루마뚜루 키웠어야 했나.


아이가 네 살일 때 동생이 태어났다. 나의 배가 점점 불러오자 아이는 손톱을 물어 뜯기 시작했고, 거칠고 폭력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아이의 불편한 마음은 채워주기 힘들었던지 아이는 온통 개구리 손톱이 되었고 나는 미술심리센터를 찾아갔다.

똑똑한 아이들이 불안도가 높다며 우리 아이가 또래 보다 정신 연령이 높다고 했다. 오히려 정신 연령을 실제 나이와 비슷하게 낮추고 불안함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딱, 1년 동안 아이는 손톱을 물어 뜯었고 어느 날엔가 자연스럽게 습관은 사라졌다.

이번에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더욱 귀 기울여주고 사랑한다고 늘 말해주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된다고 하여 최대한 언성을 높이지 않고 이야기하려 한다.

나 자신을 완전히 갈아 육아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너도 지치지. 언제까지 받아만 주려고 해.”

남편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난, 이 아이가 무슨 마음에서 이러는지 너무도 잘 느껴져서 이렇게 할 수 밖에는 없다.

내가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그대로 주고 싶지 않아서. 나처럼 방황하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완벽히 잘 한다 해도 서운함없이 클 수 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겠지만.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다.


오늘도 틱을 인터넷에 검색해 본다. 어떤 이는 빨리 병원에 가는 게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6세에서 11세에 자주 있는 일이라며 아이 마음만 편하게 해주고 모른 척 해주면 저절로 사라진다고 한다. 어떤 이는 1년 정도 지켜보라 하고 어떤 이는 운동을 시켜보라 한다.

아이가 아프면 부정하고 싶고 멀리하고 싶지만 결국은 받아들여야 아이가 건강한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다 나의 잘못 같다는 끝없는 죄책감의 낭떠러지를 떨어지는 고통을 겪는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아이를 믿고, 시간의 힘을 믿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해 본다.

너무 힘들고 지칠 때는 아이가 우리에게 온 이유를 생각한다.

남편에게 어느 날 말했다.

“아이가 우리에게 온 이유가 있을 거야. 부족한 우리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아이를 사랑해 주고 마음을 알아주고 지켜줄 수 있는 부모라서 우리에게 온 것일 거야. 우리 아이는 사랑을 가득 받고 싶어서 태어났나 봐. 그니까 우리 힘들어도 같이 힘을 내보자.”


불안이 많은 아이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말은 괜찮다는 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네가 무서움을 느끼는 이유는 상상력이 풍부해서라고, 네가 걱정이 많은 이유는 잘 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그것은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네가 나중에 큰 사람이 되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이렇게, 아이의 단점도 장점으로 이야기 해주는 것이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


자녀를 키운 다는 것은 나의 얼룩진 마음을 싹싹 지워 백지로 만든 다음 아이가 내 마음에 마음껏 그림 그릴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그것은 하루에도 수십 번 내 이를 꽉 물게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웃는 미소 만으로도 고통은 사라지니 나는 오늘도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너의 그림을 마음껏 그려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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