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왜 글을 쓰나요?
에세이_봄은 따로 오지 않는다 23
요즘은 글쓰기에 대해 고민해본다.
나는 왜 글을 쓰는지, 어떤 목적으로 글을 쓰는지, 행위에 집중을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목표를 만들어 달려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처음 글을 쓴 것은 당연히 초등학교 방학 숙제로 쓴 일기장이 되겠지만, 나는 대학시절에 쓴 리포트 하나가 생각이 난다.
교양 필수라 모든 학생들이 들어야 했던 수업인데, 주제에 맞는 글을 쓰고 중간고사로 제출한 뒤 교수님들의 첨삭을 받은 후 다시 고쳐 기말고사로 제출하는 수업이었다.
당시의 주제는 '누군가와 여행을 한다면' 이었다.
여행 장소도, 누구와 함께 여행할 것인지도, 여행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모두 내가 정해서 글을 쓰는 것이었다.
막상 쓰려니 당황스러웠다.
난생처음 창작을 하려니 막막했다.
하지만 떠오른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할머니'
할머니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에 집중했다. 내가 자취를 한다는 설정에 할머니가 내가 사는 곳으로 놀러 와 함께 바다 구경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두런두런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정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여행의 취지와는 멀어지는 듯했다.
'버스를 타고 온 할머니는 늘 그렇듯 양손 가득 반찬을 들고 왔다.'
'할머니는 나의 방을 둘러보며 혼자 살이가 기특하다며 미소 지어 보이셨다.'
'할머니의 깻잎장아찌. 냉장고에 넣으려 보자기를 풀자 시큼한 냄새가 퍼진다. 따끈한 흰쌀밥이 생각나는 냄새다. 이게 그렇게도 먹고 싶었다.'
'할머니는 외식은 한사코 거절하며 직접 구워 온 배추전과 굴비를 꺼냈다. 꽁꽁 싸맨 포일을 벗겨 내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데웠다. 방안 가득 퍼지는 고소하고 짭조름한 공기가 나의 군침을 자극했다.'
'우리가 거닐은 바닷가는 잔잔하고 편안한 파도 소리를 들려주었다.'
'할머니와 함께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종알종알 우리는 여고생이 된 것처럼 수다를 하다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할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길 바란다.'
글을 쓰며 나는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한 추억을 다시 경험했다.
그리고 할머니를 그렇게나 그리워하고 있었다.
세상살이에 치여 남보다도 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을 보고파했다.
하루에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작품들.
그 글들을 읽어 보며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정답을 알 순 없지만
우리 다 마음이 아파서 글을 쓰는 거라고
우리 다 그때가 그리워서 글을 쓰는 거라고
우리 다 누군가가 보고파서 글을 쓰는 거라고
우리 다 위로가 필요해서 글을 쓰는 거라고.
지금의 나는 그렇게 정의를 내렸다.
글쓰기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명상과도 같은 시간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깜깜한 터널을 나 홀로 걷는 시간.
그 답답한 시간을 뚜벅뚜벅 걷다 보면 나와 내가 데이트를 하는 선물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얼마나 값진 시간인가.
그 누구도 나의 마음을 완벽히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이젠 안다.
오직 나만이 나의 마음을 끊임없이 위로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글을 쓰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그 힘으로 또 하루를 보내나 보다.
시간 낭비 같아도,
너무 느리고 귀찮은 과정일지라도,
살아가는 힘을 얻기 위해 나는 오늘도 생각을 하고 연필을 든다.
쓴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쓴다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고
쓴다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이고
쓴다는 것은 내 마음에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장아찌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