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아 Aug 27. 2024

죽음 앞에서

에세이_봄은 따로 오지 않는다 22

"그날 아침에는 밥도 잘 먹었어."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그들의 죽음까지도 안고 가야 하는 일이라는 걸 잘 안다.

알지만 우린 함께하길 선택하고, 병들고 늙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졸이고, 죽음 앞에서 한없이 슬픈 존재가 된다.

나의 할머니와 13년을 함께 한 구름이는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할머니를 때릴 때도, 할아버지께서 요양원에 입원해 할머니 홀로 집에 돌아왔을 때도, 할아버지가 결국 돌아가셨을 때도 할머니의 곁을 지켜 준 가족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부터 결혼해 아이 둘을 키우는 그 긴 세월을 할머니와 함께했다.


새하얀 털과 까만 눈을 가진 몰티즈 구름이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피부병을 자주 앓았다.

부지런한 할머니는 일을 하면서도 퇴근 후에 자주 씻겨주고 말려주고 빗겨주고 피부가 무르지 않도록 관리를 해주었다.

그에 보답하듯 똑똑한 구름이는 아무거나 주워 먹지 않고 딱 할머니가 주는 사료만 먹었다고 한다.

산책할 때는 늘 할머니 품에 안겨 인형처럼 얌전히 있었고 잘 때면 할머니 곁에 누워 구름처럼 포근하게 할머니를 안아주었다.

내가 가끔 놀러 갈 때도 나를 기억하고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그런 구름이는 얼마 전부터 피부에 혹이 나고 몸이 많이 약해졌다고 했다.

날씨가 더워서일까, 이제 나이가 있어서일까.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잘 마무리되었지만 기력을 회복하기가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요즘 지내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는 구름이.

그래도 그날 아침은 유독 밝았다고 한다. 밥도 잘 먹고 할머니를 쫄래쫄래 잘 따라다녔다고.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라 병원에 가서 간단한 피 검사와 몸무게를 재고 할머니 품에 돌아온 순간, 

깨갱 하는 울부짖음과 함께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가 온 구름이.

어떻게 손쓸 방법도 없이 그렇게,

그렇게.

할머니는 죽은 구름이를 안고 집으로 돌와왔다.


"그날 아침에는 밥도 잘 먹었어. 걷기도 잘 걷고 잘 놀았는데.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려. 나 때문에 이렇게 되었나, 내가 뭘 잘못했나, 내 품에서 그렇게 되는데 참... 허무하다."

이 말이 이렇게 가슴 아픈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허무하다.'

모든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라보는 것밖에 없다.

함께 한 모든 시간이 분명 존재했는데 이젠 나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된다.

살아있음이,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라는 것.

그 앞에서 우린 모두 허무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래도 내가 일도 잠깐 쉬고 돌봐줄 수 있을 때 가서 다행이야. 나도 나이가 있는데 혹시나 내가 아파서 입원이라도 하면 얘를 누가 돌봐줄 수가 있겠어. 내가 그래도 마지막에 있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맞아. 할머니 덕분에 구름이가 오래 행복하게 산 거야. 할머니! 밥 잘 챙겨 먹어야 해. 날씨 더우니까 에어컨 꼭 틀고 시원하게 있고. 곧 얼굴 보러 갈게요."

내가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 어떤 말도 할머니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단지 시간만이 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나중에 할머니는 구름이를 단지에 잘 보관해 집으로 가져왔다고 했다.

지금은 아니고 어느 날에,

바다에 뿌리던지 산에 뿌리던지.

그렇게 한다고 말이다.

지금은 아니고. 지금은 아직 좀 더 보고 있는다고.

그렇게 우리는 죽음 곁에서 살아간다.




구름아,

할머니의 곁을 지켜주어 정말 고마웠어.

할아버지가 오래 아프다 결국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는 너를 보며 힘을 냈을 거야.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

그리고 나중에 할머니 가시는 날에 꼭 마중 나와 주길 바라.

안녕, 구름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