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대체 무슨 마음이었을까를 되뇌다 보니 해가 서서히 뜨고 있었다.
노트북을 켜 글을 써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설레고 상처받은 지난날이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바랐던 걸까.
당신이 나에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을 때,
설레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당신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기 보단
어찌 흘러가는 상황이, 묘한 분위기가, 날 향한 미소가, 조건 없는 배려가 날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
그렇지만 낯섦이 주는 아늑함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상처는 온전히 나의 몫이니 나는 나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설렘은 솜사탕과 같다.
잠깐의 행복을 안겨준 뒤, 후 불면 날아가버린다.
남는 것은 덕지덕지 설탕이 붙어 못쓰게 된 막대뿐이다.
결혼하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만큼, 실망과 상처도 컸다.
인간은 언제나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누군가와 함께해도 고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익숙함보다 설렘을 반긴다.
내가 진정 찾아 헤맨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한 순간의 설렘이었을까?
그건 처음 보는 낯선 이도, 새로운 사랑도, 애절한 이별도, 뜨거운 스킨십도 아니었다.
나를 향한 친절이 그리웠다.
상냥함과 배려가 그리웠다.
적어도 나의 영혼은 그러했던 것 같다.
바쁜 이에게 늘 상냥하게 대해 달라고만 하는 것은 내 욕심이란 걸 잘 안다.
나 또한 그러지 못한다. 누구나 그럴 수 없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준 친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결과를 받은 것 같다.
그래서 어딜 가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했나 보다.
사실은 내가 받고 싶어서.
누군가가 말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것처럼 보인다고.
하지만 정반대라는 걸 알까. 나의 진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나라는 사람이 순식간에 모래처럼 부서져 사막의 어딘가로 곧장 날아갈 것 같아서, 늘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어린아이처럼 떨리는 마음이라는 걸.
친절함이 그리웠다.
질투 어린 애정을 원했고 온전한 나의 편을 찾아 헤맸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으로 날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을 원했다.
하지만 자존심이라는 허물을 다 벗은 채 진정한 영혼의 교류가 가능하기는 한 걸까?
아직 난 알 수가 없다.
지난날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이렇게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면, 그게 옳다는 생각이 든다면
언제든 박차고 가도 괜찮다는 것.
나는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
또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이 시간들을 난 사랑했다.
어제도, 일주일 전의 목요일도, 한 달 전의 목요일도 나는 늘 같은 일상이었으리라.
그렇지만 이젠 굴레에서 벗어남이 나에게 꽤나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비가 온다.
낙엽이 지고 빗물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