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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 젖은 노래

by 초아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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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자식 물리고

젖줄은 돌처럼 굳었다

아흔 개의 주름 사이로

트롯 한 가닥 흐른다

젖은 노래 / 김경화



� 젖은 노래(디카시) 시작노트


대림역 4번 출구를 나오면 작은 개천이 흐른다.

아니, 흐른다고 말하기에는 민망할 만큼

거의 말라붙었다.


아스팔트 틈새로 터진 물길,

군데군데 박힌 돌들,

숨을 헐떡이는 얇은 물줄기.


나는 그 말라붙은 개천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오래전 우리 엄마의 젖줄을

떠올렸다.


여섯 아이를 키우느라

온몸의 진액을 다 짜내어 퍼주던 사람.

목마른 손자국을 따라 굳어버린 엄마의 몸.



돌처럼 단단해진 그 등줄기.

젖줄은 메말랐지만,

엄마는 끝내 건넜다.


삐걱거리는 골목길도,

헛기침 같은 인생도.

버겁게, 그러나 끝까지 건너갔다.


사진 속, 말라붙은 물길 사이로

아직도 조금씩 물살이 흐르고 있었다.


굳어버린 시간 속에서도

트롯 한 가닥처럼 스며드는 흐름.

그 흐름이, 엄마였다.



나는 오늘,

젖은 노래를 듣는다.


굳어버린 시간 사이로

아직 멈추지 않은 생의 흐름을 듣는다.


엄마가 좋아하는 트롯은

생의 위로를 보낸다





-김경화 시인의 디카시와 함께 걷는 풍경


https://blog.naver.com/choalove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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